멜랑콜리의 묘약

‘토요일이네‘라고 짧게 뱉는 말이 한 주의 긴장감을 일순 풀어버리는 탄성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주 토요일, 좀 더 편히(여기서 얼마나 더 편해질 수 있을까 만은)쉬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무럭무럭 피어오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보일러 공사를 구경 참견 세면 먼지를 들이마시며 얼렁뚱땅 보낸 견적이 43만원 이었다. 주말 비용치고는 꽤, 꽤? 좇나 많이 나갔지만 앞으로 아껴가며 잘 살아야지 위안하며 넘겼다. 겨우 넘겼단 말이다.
사흘 후 아랫집에서, 물이 또 새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옹송크려지더만 습관처럼 몇 날이 아프다. 오늘 드디어 토요일, 끔찍한 토요일, 다른 시공사를 찾았다. 견적 80만원(합계 123만원) “이것도 갈아야 하고 저것도 갈아야 하고…….” 이렇게 갈다간 가을에 풍년 나겠어 얼쑤. 300D를 포기하고 ‘그래 내 주제에 무슨 dslr이야’하며 D70이 나와도 ‘에잇 역시나 그림의 떡이야’ 하며 ‘내 주제를 알자 알아야해’ 하며 그렇게 이불 뒤집어쓰고 하며하며하며 꾹꾹 참았는데, 보일러만 멀쩡했어도 다 살 수 있었어. 설레고 행복에 겨워 ‘토요일이닷’ 탄성을 지르며 아무리 추워도 출사를 계획하고 ‘이까짓 세상쯤이야 다 찍어 버려’, 그렇게 깔봤을 텐데.
공사는 하루 종일 걸릴 것이래. 그래서 오늘 할 수가 없고 내일(내일? 일요일? 일요일은 빨간 날이잖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할 것 같데, 아랫집에 물이 흥건하니 오늘은 우선 보일러를 잠그라네. 온수는 더더군다나 써서는 안 되고, 오늘의 서울 날씨, 온도 최고-1℃, 최저 -7℃, 마음은 절대온도 0K, 모든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아. 진공 상태가 된 머릿속을 수직 운동하는 단어를 멈출 수가 없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 머리를 뚫어도 좋으니 꺼져버리란 말이야.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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