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외치고 싶다.

덥고덥고덥고 거기에 몇 가지 일이 짜증을 보탠다. ‘씨발‘하고 외치고 싶다.
한 달쯤 됐나? 책장 옆에 쌀가마니를 두었다. 쌀에서 난 고자리가 책장과 책 틈마다 난리도 아닌 게다. 모든 책을 일일이 커버를 벗겨서 닦고 책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들어내고 벽돌을 닦고 벽을 닦고 어디든 미세한 틈만 있으면 어김없이 자리를 튼 고자리를 쓸어냈다. 쓸어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온 벽과 책 사이에 흐물흐물 벌레가 기어다닌다고 생각해봐라. 머리털이 실제로 쭈뼛 선다. 사흘 동안 5통의 에프킬라를 뿌려가며 벌레를 거의 박멸하는가 싶었다.
일주일이 그렇게 흘렀나.
그러다 얼마 전 어이없는 소나기로 책장이 흠뻑 젖었다. 장정일 박상륭 다자이오사무 김소진 성석제 오에겐자부로 김영하 김연수 채광석 이인성 고종석 백민석 공선옥 요코미쓰리이치 오오카쇼헤이 무라카미류 무라카미하루키 야마다에이미 나쓰메쏘세키 미야자와겐지 사가구치안고 이창동 이만교 가오싱젠 위화 노신 모얀 등등이 비를 맞았다. 그냥 멍하니 기가 찼다. 생쇼를 하며 벌레를 치웠던 생각을 하니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꽤 비싼 돈을 주고(프로이트 전집 두 질은 사고 남는 정도) 자전거를 샀었다. 이름은 오코너의 노래제목을 따서 ‘레드풋볼’ “아임낫어레드풋볼……..” 얼마나 흥겨운가. 춤이 절로 나고 언제나 자전거를 이름처럼 탔다. 신나고 즐겁게. 자전거는 내 공간을 낯설게 만들었다. 생소하게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항상 지나던 길을 보는 눈높이가 조금 달라졌고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내 안에서 조합되는 느낌이 달랐다. 무릎을 살짝 굽히기만 해도 하늘이 높은 것처럼 자전거가 보여준 세상은 꽤 설레는 곳이었다.
오늘 잃어 버렸다. 음 도둑맞았다.
로또를 샀다. 로또야 되어라. 나의 멜랑콜리를 날려다오~~ 인생은 모르는 거라며? 이딴 식으로 자꾸 뒤통수 치지 말자.

집에 가기 전에

이런 꿈을 꾸었다.
풀숲이 우거진 어둑한 산길에서 청솔모가 말을 건다.

"여기는 사람의 발자국을 잊은 곳이에요. 이곳에 흔적을 남기면 산을 헤매던 영혼들이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걸을 테죠. 거기에서 그 영혼들이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세계를 기억해 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등 뒤에서 그 세계를 향해 팔매질하겠죠. 당신은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좋아요. 거꾸로 가야 하는데 밟았던 길을 되짚어 뒤로 걸어야 해요. 발자국이 새로 생기면 그들은 당신의 등에 올라서 당신의 눈을 가리겠죠. 이 숲은 사방이 낭떠러지인걸요. 왜 내가 당신께 호의를 표하느냐고요? 오래전에 당신은 강릉의 한 숲에서 내게 말을 걸었어요. 기억 못 하겠지만 내게 인사를 하며 중얼거렸죠. ‘너 외롭구나, 네 눈에도 내가 비치는구나 금세 너를 닮아버리네, 내 말을 알아들으면 언제고 나를 찾아오렴, 난 곧 강릉을 떠날 테니 꿈길에서라도 조우하자꾸나. 그때는 네가 내게 말을 걸어다오’ 언제나 생각했어요 누구든 내게 처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친구가 되겠다고요. 난 당신의 친구예요. 더는 이 숲에 발을 디디면 안 돼요. ……"

하늘이 더 깜깜해졌고, 꿈은 또 꿈을 꾸었다.

난 잠에서 깨어 거꾸로 걸어본다. 청솔모야, 청솔모야 난 어떻게 집에 가니? 이명박이 집에 가는 버스를 없애버렸단다.

미끄러지다

설프게 비가 내린다.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부슬거린다. 숨책에 자전거를 묶어둔 것을 집으로 가져와야지 싶었다.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은 허벅지에 어떤 무리도 없다. 외려 바퀴에 딸려 발은 내 의지를 벗어나고, 바람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게다가 비까지 한몫하니, 속도는 거칠 게 없다.
‘비가 계속 오면 어쩌나’라고 생각 하는 순간 바퀴가 아스팔트를 엇나갔다. 왼쪽 무릎과 양손바닥이 듬성듬성 패였다. 살 껍질은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이거 참, 보고 있자니 아찔한데 그닥 아프진 않다. 상처는 보이지 않으면 이보다 덜 아프다. 피는 ‘아프다’라는 기의를 끌어내는 기표로서 작용한다. 보이는 것이 언제나 사실 그대로는 아니다. 에포케(epoche’)를 사회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 기대하기란 무리지만 보이는 것으로도 훌륭한 은유가 되고 그것은 어떻게든 행동을 유발시키니 그만하면 충분하다. 사실이라고 알던 것을 믿고 따라가면 사실에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알던 ‘사실’과 엄청난 괴리를 가진 ‘사실’이 조우하게 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어차피 병원에 가는 길이었고, 가는 김에 소독을 했다. 간호사는 ‘썩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한다. 내 몸도 확인하지 않으면 곯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고 보이는 상처도 아프지 않은데 하물며 타자를 염두 하면 아찔하다. 당신들도 나처럼 병들었어요!

몇 가지 거짓말

같은 사건들. 만우절이다.
“군사쿠데타로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라는 이대 김용서 교수는 “당신의 제자라서 부끄럽다”는 제자들의 침묵시위로 인해 수업이 끝나고 뒷문으로 줄행랑쳤다. 강의실에 들어갈 때는 다른 제자들에 둘러싸여 취재진을 피했다. 내란을 선동하는 김용서와 해방 이후 최대 거물간첩이라는 송두율 중 누가 더 위험한가? 며칠 전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서울중앙지법(이대경 판사)은 송두율 교수에게 7년 형을 선고했다. 송두율 교수는 정말 이 사회에서 공안검사 공안판사 공안기자들보다 더 위험한가?
객사한 아버지, 뇌종양의 어머니를 모시던 중학교 3학년의 여학생이 목을 맸단다. 소녀가장으로 살기가 힘들어서, 일본어도 컴퓨터도 음악도 기타도 배우고 싶다고, 하고 싶다는 유서가 남았다. 밥통에 동생들과 엄마를 위해 마지막으로 밥을 지었단다. 가난은 재난이다. 얼마 전 차떼기당은 한 달 이용료 4천2백만 원짜리 천막으로 이사했다. 아무 성과 없던 정략적 특검은 그 비용이 14억이 들었다. 17대 총선 충남 어디에 출마한 누구는 재산 신고 22억 7천9백만 원인데 5년간 낸 세금이 1만 4천 원이란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지부장 샤말 타파가 강제추방 되었다. 샤말 타파는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저지와 합법화를 위해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 지난 2월15일 법무부직원들에게 납치, 여수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 중이었다. 샤말은 납치 당시 인권침해와 보호소 내 인권침해로 국가인권위에 제소 중이었다. 국가인권위는 조사 중에는 강제출국은 있을 수 없다고 했으나 법무부는 모든 인권위에 군림한다.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에 있다가 잡힌 비두(방글라데시)는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서 강제 출국당했다. 샤말이 추방당한 네팔은 정부군과 마오주의자들 간의 내전이 한창이다.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은 139일째 계속 되고 있다.
교사의 여학생 폭행 동영상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난리다. 어느 선생이 여중생을 주먹으로 구타한다. ‘그럴 수도 있지’, ‘나 때는 저보다 더했어’, ‘저 정도도 맞은 거냐?’, ‘여학생도 잘못한 거 같다’라는 반응을 보면서 내가 사는 곳이 참 무서운 곳이라 곱씹는다.
그제 김동원 감독의 ‘송환’을 봤다. 보는 내내 인간의 품위를 지키자는 게 이렇게 처절한가 하며 아프고 부끄럽고 분했다. 하워드 진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품위가 지켜지는 작은 영역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언제나 간단한 답은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너무 쉬운 말들의 잔치는 지긋지긋할 뿐.
오늘 하루.
모든 것들이 만우절이라며 그냥 짓궂은 장난질이었으면 좋겠다.

평화교본 Friedensfibel

톰슨의 My Study가 위안이 될 때가 있다.

"
난 내 책상으로 돌아간다. 만약 투쟁하거나
꿈꾸거나 함께 할 수 있다면, 누가
책에 밑줄이나 그으며 이 밤을 지새우려 하겠는가?
"

브레히트가 「전쟁교본」의 후속 작품으로 쓰려고 했으나, 단 한 편의 시를 써 놓고 미완이 된 작품이 「평화교본」이다.

"
잊지 말아라, 너희보다 못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퉜다는 걸,
왜 자신들이 아니라 너희가 이곳에 앉을 수 있느냐고.
책 속에만 파묻히지 말고 함께 투쟁하여라.
배움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배워라, 그리고 그걸 결코 잊지 말아라.
"

중심을 잃고 나면, 보편은 없다. 실은 그 ‘사소하다’는 레토릭에 휘둘렸던 모든 게 중심이어야 한다.

The Birthday of the World

The Birthday of the World
어슐러 K. 르 귄의 「The Birthday of the World and Other Stories」세상의 생일과 다른 이야기들-을 선물 받았습니다. : ) 헤인 시리즈의 결정판입니다!!!? ;;;
Coming of Age in Karhide
The Matter of Seggri
Unchosen Love
Mountain Ways
Solitude
Old Music and the Slaves Women
The Birthday of the World
Paradises Lost
수록 된 단편 중 ‘세상의 생일’은 얼마 전에 번역이 됐고, 르 귄에게 네 번째 네뷸러상을 안겨줬던 solitude와 팁트리상을 받은 Mountain Ways와 The matter of Seggri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작품이 다수인데 Paradises Lost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발표하는 것이라네요.
즐겁냐고요? 물론이죠. 게다가 마구마구 설레고 있답니다. 🙂
조만간 리뷰를 올릴게요.

병원

8시가 아직 한참인데, 휴대폰이 울린다. 낯선 번호인지라 갸우뚱하며 전화를 받는데, 119대원이란다. 응급실로 어머님께서 실려 간다는 소리가 다급하다. 양치를 하면서 해야 할일들을 정리한다. 이런 일에 허둥대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이다. 성심병원 응급실에 있다가 전에 수술했던 병원으로 옮긴다. 덕분에 신촌은 자주 들락거리지 싶다. 응급실은 밤새 술 마시다 속이 아파서 온 일행으로 도떼기시장 같다. 그런 소란이라니. 권지예의 ‘행복한 재앙’에나 나올법한 병원이다. 행복한!
CT 촬영동안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있는데, 어느 아저씨가 물리 치료를 받고 나온다.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모녀(짐작컨데)에게 ‘어이구 이산가족 상봉이네’하며 서로 즐겁다. 일가족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니 웃으면 안 되지 싶은데도 그닥 민망하진 않다.
2시가 다 되서야 결과를 가지고 의사와 면담을 하는데, 콩나물 냄새가 역하다. 수술비용이 칠백이라는 말에 그제야 덜컥 겁이 난다. 아서라 아서.
복도 컴퓨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10분간 자리를 맡고서 나는 주저리주저리 쓴다. 아무도 몰래 여길 떠야지란 다짐을 한 적이 있다. 그게 조금 미뤄지는 거다. 배가 고프다.
병실을 나오다 엄마 얼굴을 보는데 반칠환의 말 한 자락 가슴을 친다. ‘얘얘. 저 봐라. 창밖에 누구네 할머이 오셨다’
까칠한 엄마 손이 따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