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나들이 어떠세요?

그런 날들이 있어요. 궁뎅이가 촐싹이며 마음까지 에부수수할 때 몸을 가볍게 하고 한적한 곳을 싸돌아 댕겨야, 겨우 책상머리에 앉아 할 일들을 주섬주섬 챙길 수 있죠. 간간이 학교에 갈 때나 일터에 가면서 헌책방을 지나치곤 했지만 ‘오늘은 헌책방에 가야지’라고 미리 다짐을 해두면서는 통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며칠 전부터 헌책방에 가야지하고 곱살지는데, “부깽 돈 없다며?” 라고 그루박아 말하더군요. 네 없어요. 그러나 자본주의는 돈 없는 나까지 슬겁게 대하는 미덕으로 신용카드를 추겼고 어찌하다 보니 빌붙고 있답니다. 뼈 빠지게 일하지는 않지만 달이 바뀌는 게 끌탕하긴 마찬가지예요. 기껏 해봐야 인터넷을 통해 책 몇 권 주문하고 어쩌다 커피 한잔하고, 오질라게 추운 날 자전거 대신 지하철을 이용한 게 다인데도 통장에 잔고가 빠지는 날이면 입질에 걸린 붕어처럼 파다닥 하다가 축 처지고 말아요. 그렇다고 참새가 포수 무서운 거까지 생각하면서 방앗간에 가겠어요. 우선 가고 보는 거죠. 카드가 없다고요? 그럴 땐 영풍이나 교보에 가서 몰래 영구 대출을 하는 게 좋죠. 여기서 ‘몰래’가 중요해요. 자기만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쥐구멍에 머리 박고 ‘나 안 보이지’하는 것처럼 했다간 진짜 쥐처럼 하루 죙일 벽보고 무릎 꿇고 있어야 할걸요. 뭐든지 계획이 중요해요. 목욕재계하고 옷을 깔끔하게 입고, 괜히 잠바 앞 지퍼랑 열어 두지 말고 나볏하게 심호흡 한 번 하고 책방에 들어가세요. 좋아하는 코너에 가서 감시카메라의 위치와 직원들의 행동반경을 가늠해두고 시작하는 거죠. 책은 안 보고 게름 게름하며 그들의 좌표범위와 운동량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관찰자에 의해서 관찰 대상이 영향을 받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잊어선 안 되겠죠. 그러다 기회다 싶으면 몬창몬창하지 말고 한 번에 휙~~ 참고로 한 번도 못해본 일이에요. 그냥저냥 도서관에서 빌려보겠다고요? 네 반납기일을 지키는 것 잊지 마시고요. 겨울에 때 아니게 비 온다고 우산대용으로 쓰지 말고요, 아무리 리포트가 넘쳐도 밑줄 쫙쫙 그어가며 짜깁기 흔적 남기지 말아 주세요.

씹떡껍떡한 소릴랑 그만하고 아저씨 말로는 1년하고 몇 개월 만에 찾았다는 일산 집현전에 갔어요. 그새는 아니지만 길 건너엔 2층 매장도 생겼네요. 『과거와 미래 사이』 『페미니즘의 도전』 『골렘-과학의 뒷골목』 등등의 책을 샀어요. 요 책들이 벌써 헌책방에 나왔느냐고요? 세상 살다 보면 책깡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 집현전 같은 경우는 예전에도 말했지만 새책들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어요. 아주마씨의 동생 되시는 분이 어디 출판사에 다녀요.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출판단지도 있잖아요. 소문엔 교수들이 일산에 많이 산대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증정본이라고 해서 “누구누구 혜존”, 피 튀겨가며 책 사도 쟁여 놓기만 할 때가 있는데 지들이 공짜로 받은 책 다 읽겠어요. 여하튼 요런 이유와 아무런 상관없이 신간도 신간이지만 재고 도서라든지 새책 같은 헌책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가 집현전이랍니다. 직접 들러보세요. 참 b님을 위한 『캐치-22』도 샀어요.
가방에 책이 한 짐 가득이네요. 읽지도 않고 뿌듯해질 때는 요때뿐이죠. 작심하고 나왔으니 홍제동 대양서점에도 들러야죠. 대양서점은 용산 뿌리서점과 더불어서 책값이 참 싼 곳이에요. 아버지는 1매장 아들은 2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1매장은 여타의 동네 헌책방과 별다를 게 없이 이러루한데, 2매장은 헌책뿐만 아니라 오래된 lp와 골동품 얄개 영화포스터 같은 것이 한데 아우러 사뜻한 박물관 같아요. 널치난 몸도 쉬어가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죠. 대양에서 짬뽕을 시켜 주기에 맛나게 먹고, 커피로 입가심하고 인삼차를 후루룩 마시고 슬렁슬렁 책장을 기웃거리면서 몇 권의 책을 뽑았죠. 대양에도 한 코너에 새 책들이 즐비하지만 그보다는 구석구석 숨은 책들을 찾는 즐거움을 택하고, 그냥 보면 뭐하나 노느니 염불한다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여성학 책들을 한데 추렸어요. 누군가에게 한 방의 축복이길 바라요. 대부분 새 책으로 구할 수 있겠지만 아예 검색이 안 되는 책들도 더러 있어요. 가지런히 꽂아 뒀으니 다녀와 보세요.

『다른 목소리로』 – 너무나 유명해서 그닥 할 말이 없지만 스타이넘이 요 책을 두고 “인간 사회에 여성의 삶을 끌어들임으로써 인간 사회 자체를 완결한 책”이라는 소문을 내고 다녔어요. 여하튼 여성학과 심리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책이랍니다. 수 세기 동안 남성의 경험이 흡사 인류의 경험인양 사기 치던 기존의 발달 이론에 똥침을 가한 책이죠.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 게센인이 아닌 이상 요걸로 위안 삼으세요.
『내부로부터의 혁명』 – 진즉에 절판인지라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데,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인도에서 요가 배운 뒤에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과 관련해서 쓴 것입니다. 1,2 권으로 나왔는데, 1권은 어쩌다 헌책방에서 반짝하는데 2권은 잘 안 보여요. 다니다 보면 만날 날이 있겠죠. 저도 몇 년 전 오늘처럼 무작정 다니다 우연히 만났던 책이에요. 요전에 봤던 벨 훅스의 『사랑의 모든 것』에서도 짧게나마 언급을 하고 있어요.
『페미니즘과 문학』 – 출판사에서는 더 못 찍을 테고, 대학 구내 서점 같은 곳에 재고가 남은 걸 본 적은 있어요. 일레인 쇼월터의 ‘페미니스트 비평 황야에 서다(다시 나왔지만)’나 크리스테바의 ‘정신분석과 폴리스’ ‘중심에 있는 어머니’ 등등 중요한 텍스트들이 실려 있어요.
『페미니즘 이론』 – 페미니즘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죠.
『남성의 본질에 대하여』 – 요것은 『남자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의 역사』란 제목으로 개정돼서 다시 나왔어요. 안 읽어 봐서 올마나 바뀌었는가는 모르겠네요.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 성 정체성에 대한 ‘nature’냐, ‘nurture’냐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죠.
외에도 『현대 여성 해방 사상』 『가족은 반사회적인가』 『페미니즘과 종교』 『한국의 여성과 남성』『여성해방의 이론 체계』 등등 다양한 여성학 관련 책이 즐비하더군요.
암암한 기억을 좀 더 쥐어짜 보면 페미니즘 서적 외에도 몇몇 특별한 책들이 있었어요. 가령 김산호의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1,2,3, 양장케이스 같은 것 말이죠. 찾던 사람에게는 춤출 일인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짐이죠. 9만 얼마였던 책값이 올라서 12만 원이나 하는 책인데, 책값이야 엿장수 맘이라고 1/3 가격 혹은 말 잘하면 1/4에 살 수 있을 거예요 . 상고사를 다루는데 내용도 재미난 것은 물론이고, 만화도 스펙터클이 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죠.
그리고! 『모피를 입은 비너스』도 있었어요. 요것은 들뢰즈 『매저키즘』에 부록으로 실려 있긴 하지만 ‘인간사랑’보다 ‘과학과사상’의 번역이 더 잘 읽혔어요. 게다가 표지도 더 이쁜걸요! 사드에게 『안방철학』(규방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더군요)이 있다면 마조흐에겐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있죠.
당연히 기억 못 하는 책이 훨씬 더 많아서 뭐가 더 있는지는 역시나 직접 나들이하시는 수밖에 없어요. 두 책방의 약도는 홍제동/대양서점, 일산/집현전을 참고 하세요.

대양 서점에서는 저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아방가르드 예술이론』과 『아마조네스의 꿈』을 샀어요. 『아방가르드 예술이론』은 86년에 출간된 것인데 같은 해에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라는 제목으로도 심설당에서 나왔었죠. 이미 제본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무척 어렵게 ‘독해해야’했던 책이었죠. 두 번역을 비교해 보았는데, 적절하게 합치면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기회가 있을랑가는 모르겠네요. 원저의 제목을 그대로 따른 『아방가르드 예술이론』은 영어를 중역한 것이고,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는 독어를 번역한 것인데, 때로는 중역이 더 훌륭할 때가 있기 마련이죠. 도스또예쁘스끼의 범우사판과 열린책들판을 생각해 보세요.

『아마조네스의 꿈』은 바바라 워커의 소설이에요. 원제는 짐작하신대로 ‘아마존Amazon’이에요. 『흑설공주 이야기』같은 동화 뒤집어 보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아마존’도 일찍 번역이 됐네요. 안티오페라는 여성왕국 아마존의 무사가 20세기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떨어지면서 생기는 일이에요. 이거 내용을 말하기 아쉬울 정도로 옛날 수업 중에 몰래 반찬 집어 먹던 달근달근한 게 있네요. 🙂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페미니즘 비평을 큰 틀 안에서 보자면 가부장적인 윤리적/인식론적 가설 토대를 드러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소위 ‘객관적 권위’에 대해 의문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그 ‘객관성’과 ‘권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는 방법론은 페미니스트마다 제 각각의 입장을 견지하며 발전해 왔다.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에서 토릴 모이는 유물론적 페미니즘 전통 아래서 영/미 페미니즘이론과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영/미 구분에 대해 자넷 토드의 지적대로 사회주의적 전통에 있는 ‘영국 페미니즘’과 ‘미국(백인 중산층 여성의) 페미니즘’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릴 모이의 ‘영/미’와 ‘프랑스’ 구분은 그들이 활동하는 지적 전통하에서 텍스트의 접근 방법을 토대로 하니 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모이는 경험주의적 전통에 있는 일레인 쇼월터, 케이트 밀렛, 메어리 엘만, 샌드라 길버트&수잔 구바와 이에 대비되는 반본질주의적 특성을 갖는 엘렌 식수,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텍스트 등을 분석하고 있다. 모이는 이들 텍스트의 탈정치화된 독해법에 대립해서 정치화된 독해법을 증명해 내려고 하고 있다. 즉, 페미니즘 비평의 의의를 이론이나 방법론 차원을 넘어 정치성의 차원에서 찾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는 페미니즘 비평에서 완전히 새로운 제3의 태도를 제시한다기보다는 담론의 장(싸움의 장)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가깝다. 이 책의 역자들은 모이가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이라는 것이 수사적인 의미 외에 어떤 정치적 힘을 지니는지”에 회의를 가지며 거리 두기를 하는데, 모이가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페미니즘들 사이에서 부재한 ‘비판적 논쟁’을 끌어내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여성의 시간」에서 ‘차이’의 담화와 이에 대립하는 거울의 영상으로서 ‘평등’의 담화 그리고 이 모두를 극복하는 해체와 초월의 ‘제3의 공간(세대)’을 제시한다. 제3공간은-공간인 가운데 욕망을 갖는 정신의 공간으로- 모든 성적 정체성, 이분법적인 대립물, 모든 가부장적인 행태는 ‘형이상학’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토릴 모이는 크리스테바의 이론에 상당히 빚지고 있지만 ‘차이’와 ‘평등’이 단순히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평등’을 필수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형이상학’을 해체한다고 했을 때, 차이와 평등의 페미니즘 논리 또한 해체 위기를 맞게 된다. 크리스테바에게 세 가지 페미니즘 공간들은 논리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양립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모이는 크리스테바와는 달리 이 세 가지 입장을 한 공간에 모두 견지하고자 한다. 논쟁적으로 어느 한 가지 입장을 택하는 동시에 차이, 평등, 제3공간 페미니즘의 모순점들을 극복해 가는 것이다. 가령 스피박이 『다른 세상에서』를 통해 보인 텍스트 전략-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 재생산에 대한 페미니즘적 논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식민지 주체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들이 동시에 불거져 나와 갈등상태에 놓이게 된 것-처럼 “서로를 위기로 몰아 서로를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여러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잇달아 생기는 위기는 선형적인 연속성을 파괴하고 주체와 주체의 담론들이 탈중심화하려는 욕망을 도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그로츠는 「존재론의 연막」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어떤 이론이든 한 입장에 서서 모든 영역의 이론을 완전히 포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입장을 택한다는 것은 ‘신중하게 틀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입장을 제시하고 전략적으로 특정한 주장을 발전시켜 간다는 것은 언제나 경쟁 위치에 있는 다른 입장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부정하며 배제한다는 데에서 페미니즘‘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단 하나의 ‘올바른 페미니즘’이 있을 수 있겠는가?

덧붙이 –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은 페미니즘이론에 대한 개괄서로도 손색이 없는데, 좀 더 쉽게 접하려면 소피아 포카의 『포스트페미니즘』과 라캉(5장)에 관한 보론 격으로 엘리자베스 라이트의 『라캉과 포스트페미니즘』을 먼저 읽으면 도움이 될 듯싶다. 둘 다 매우 가벼운 책이다. 여기서 ‘가벼운’은 물리적 무게이다. 토릴 모이에 대한 다른 번역으로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한신』에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문체」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가장 읽고 싶었던 텍스트는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그리고 뤼스 이리가레의 『타자인 여성의 반사경』이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이론서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언급 하고 있지만 그 첫 장이 『현대문학 비평론/한신』에 ‘에밀리 브론테’에 관한 「마주 향해 바라보기」가 『영미여성 소설론/정우사』에 번역됐을 뿐이다.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 방에는 없다. 제발 번역 좀 해주면 꼭 “새”책으로 사서 읽으마. 무수히 많은 전공자를 두고, 없는 능력 시간 쏟아가며 원서로 읽기엔 왠지 좀 억울하다.

책방 나들이

하늘은 흐리멍텅 춥기는 오질라게 춥고 오랜만에 교보를 향해 활보할까 종각지하도를 나서는데 바람이 휙 하고 으스스 속삭이더라. 따뜻한 지하도와 연결되는 영풍으로 가라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탈까 아무리 고민해 봤자, 결론은 쿨맥스 액티브 내복밖에 떠오르는 게 없고, 그렇다고 여름에 더위를 안 타는 것도 아니고, 날씨는 사시사철 징글맞게 나와는 멀어져만 간다. 나이 탓을 해보고 싶지만 울 엄니도 안 춥다는데 감히. 나는 한낮의 섭씨 25도 여름과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체감 -1도의 겨울을 좋아할 뿐이다. 여하튼 따신 영풍에서 오랜만에 ‘새’ 책 냄새를 맡으며 코너마다 기웃거려본다. 원래는 몇 권 생각해 둔 게 있었는데, 결국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의외의 두 권이다.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결정-원제 Le grain de la voix 목소리의 씨앗』과 파스칼 브뤼크네르와 알랭 핑켈크로가 같이 쓴 『길모퉁이에서의 모험』. 죄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다. 바르트가 만난 역자들은 들쑥날쑥했지만 외의 두 사람은 동문선에서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좋은 역자를 만나는 복 아닌 복을 누렸다. 『목소리의 결정』은 롤랑 바르트의 대담집인데 이전에 『텍스트의 즐거움』에 실렸던 「스티븐 히스와의 대담」과 「롤랑 바르트의 주요어 20개」 「지식인은 무엇에 소용되는가」가 중복되어 있다. 말하기는 그 상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쓰기보다 좀 더 명확하게 사유를 가로지르곤 한다. 대담집의 장점이라면 여러 대담자가 ‘하나의 목소리’를 적절히 상대화시킴으로써 더욱 객관적인 진실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흐친이 말하는 것처럼 대립하는 다양한 의식이나 목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대화적 관계’를 통해 ‘축제적 다성성’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심심하지 않을 책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조금 아쉽다면 이 책에서는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에서 진행했던 모리스 나도와의 대담은 들어 있지 않다. 이전에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는데,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입문서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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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PFLP: 세계전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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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군/PFLP: 세계전쟁선언
   Red army/PFLP: Declaration of World War
   赤軍-PFLP 世界戦争宣言

   아다치 마사오 足立正生
   와카마츠 코지 若松孝二
   1971 | 16mm  | 71min  | 일본

영화와 혁명 특별전을 통해 ‘적군/PFLP – 세계전쟁선언’을 봤다. 영화라기보다는 프로파간다였지만 간혹 문자로만 접하던 적군파의 활동을 영상으로 본다는 것은 퍽 흥미진진한 일이다. 게다가 국보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남한 땅에서 이런 ‘적군파’를 공개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니, 여러모로 재미난 일이랄 밖에.

69년 일본의 도쿄대와 일본대를 중심으로 했던 전공투 운동이 경찰력에 의해 봉쇄당하면서 무장봉기와 군사적 행동으로 활로를 모색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바로 적군파이다. 제목에서와같이 적군파의 슬로건은 세계전쟁선언이다. 그들은 이전의 활동을 혁명적 패배주의로 간주하고 전단계 무장봉기 – 세계 혁명전쟁, 세계 黨 – 세계 적군 – 세계 혁명 전선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내건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대로 적군파는 창설 직후 對 권력투쟁으로서 파출소 습격, 무기 탈취, 69년 10월 국제 반전 시위에서는 쇠 파이프 폭탄으로 신주쿠 역을 습격하는 등 무력시위를 감행한다. 그러나 11월 수상관저 습격을 목적으로 군사훈련을 하던 중 경찰 측에 알려져 53명이 체포되며 큰 타격을 입는다. 이 사건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적군파는 이후 도쿄 집회를 통해 ‘국제 근거지 건설, 70년 전단계 봉기 관철’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그중 하나가 ‘불사조 작전’이라고 불렸던 일본 항공기 요드호 납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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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3월 31일 9명의 적군파 멤버는 후지 산 상공을 날고 있던 일본 항공 보잉 727기를 납치 북한행을 요구한다. 그 비행기에는 7명의 승무원과 131명이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급유를 요구하며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했던 요도호는 환자와 여성, 어린이들 23명을 내려놓은 후 북한을 향해 비행한다. 그런데 wikipedia를 보니 이들이 도착한 곳은 김포공항이다. 처음엔 뭔가 잘못 적혔나 싶어서 먼지 쌓인 책을 뒤져보니 할리우드 영화 같은 상황이 전개됐던 것이다. 요도호는 후쿠오카 공항을 이륙해서 북한으로 가는 중에 남한공군기에 유도되어 김포공항에 착륙한다. 적군파가 마음을 바꿔서 당시 자유민주주의 개발독재 다카키 마사오의 나라에 온 것은 아니고 남한 측이 북한인 척 위장했던 것이다. 남한은 북한군 복장을 하고 가짜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났건만 적군파가 이를 알아차리고 대치 상태에 들어간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키득거리면 죄스럽지만, 환영플래카드가 펄럭이고 북한군인 척 행세를 했던 남한군들을 생각하면 좀처럼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ㅋㅋ) 남한 측과의 협상을 결렬되고, 4월 1일 도쿄에서 날아온 야마무라 일본 운수차관이 적군파와 교섭을 재개한다. 기내투쟁을 벌이던 적군파 9명은 야마무라의 인질 맞교환 제안을 수용, 야마무라와 승무원 3명을 제외한 인질 전원을 석방하고 4월 3일 오후 평양으로 향한다. 평양에 도착한 직후 요도호는 다시 야마무라 차관과 승무원 3명을 태우고 4일 하네다 공항에 무사히 귀환한다.

무사히 귀환? 그렇다면, 영화에서 폭발한 비행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후 적군파가 또다시 하이재킹을 시도한 것은 73년 7월 20일 마루오카와 팔레스타인 4명이 파리 발 하네다 행 일본 항공 점보 404기를 납치한 것이다. 이들은 ‘일본과 팔레스타인 혁명을 결합하는 세계 혁명전쟁’이라 부르며 3일간에 걸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항, 다마스커스 공항 등을 거쳐 리비아의 벵가지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인질 141명을 풀어주고 항공기를 폭파한다. 영화는 71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리되면 또 아귀가 맞질 않는다. 누가 알려다오, 더는 엄한 나라말들 찾아다니기 지친다.

세계전쟁선언

영화는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사상을 그대로 승계하며 무장봉기와 하이재킹을 선동하고 있다. 중간부터는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활동(혁명에서 ‘개인’은 반동일 뿐이다. 그들의 일상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날마다 총검술을 한다거나 총구분해 조립 등등의 반복이다.)을 주로 보여주는데, 감독 중 아다치 마사오는 74년 PFLP에 직접 투신 영화처럼 살았단다.(또 다른 감독 와카마츠 코지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면 여기를). 인터내셔널가가 3번 울린 것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시오니즘 반제국주의 반미 등등으로 덧칠한 비행기를 폭파하는 영상인데, 대체 그게 어떤 사건이었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

이제는 빛바랜 혁명전사들인데, 그게 또 불편하기도 했는데, 하이텍알씨디 고공농성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를 보면 적군파처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단 말이지. ‘Coup pour Coup! 주먹에는 주먹!’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신촌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 언제나 구석진 자리에서, 풍경처럼만 자리한다. 조리개 값 1.2, 중앙에 초점을 맞춘 사진에서 맨 구석 희미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반 친구들에게 어쩌다 하고 싶은 말들은 혀끝을 맴돌다 이내 수그러든다. 말이 적은 편이었냐고? 말은 끊이질 않는다. 다만 소리가 되지 않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다. 명동에서 어렵게 더빙해온 일본 판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국어 선생이 신촌 한 여관에 술이 떡이 되어 들어가는 모습도. 크리스탈 백화점 앞에서 눈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말도 혼자서만 앙잘거릴 뿐이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모든 게 안 해도 될 말이다.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졸업을 한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다. 그냥 수다를 떨고 싶었다. 필요 없는 말이면 어떠냐고, 그 말에서 다른 마음이 생길 줄 아느냐고, 그렇게 마음이 생기면 또 말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게 이어가고 싶었다. ‘중요한 게 아니잖아?’ 라고 어디선가 들려오곤 했다. ‘응, 중요하지 않아’ 하고는 입을 닫았다. 그렇게 쓸데없다고 믿었던 말들은 성대를 울리지 못했고, 말들이 잊혀 졌고, 기억이 잊히고, 마음을 잃었다.
김종삼김민정의 시를 번갈아 읽는다. 김종삼의 시는 소리가 없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올 것도 같았지만, 피아노 반주도 변사도 없는 무성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래도 말은 그림이 된다. 김민정의 시는 끊임없이 조잘대는 말들이 좀처럼 여백을 만들어 내지 않고 있다. 그의 수다는 북적이는 선술집의 성가신 소음이 아니라 주변적인 것들에 무게를 두고 반짝이고 있다. 뻥긋하는 금붕어라니, 천만에 ‘반짝거리는 수다’이다. 이런 수다!
좀처럼 우아하지 않게 그러면서 말하기 거북했던 것들을, 쓸데없다고 믿던 것들을 아무렇게나 혹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토해내고 있다. 옆자리의 통화를 엿듣는 모양새로 그의 시를 읽고 있자면 아니꼽살스럽다는 듯이, 말들은 확성기를 들이댄 야채장수처럼 소리 지르고 있다. 그의 말들은 가볍지만, 그로 상상력은 경계를 넘어 나긋하다. 겨울 햇살이 일요일 오전을 비추듯이, 손을 뻗으면 눈이 부셔 살짝 찡그리는 나긋함.
거기에서는 언어가 시를 통해서 새롭게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시’도 일상의 언어들의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비로소 나부대던 궁상들도 세계의 중심이 되고 더 이상 주변적인 것은 어디에도 없다. 수다는 말로, 말은 마음으로 간다. 그렇게 엮여도 시가 되는 걸 알았다. 17년 전에도,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는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을 게다. “국어 선생이 말이지, 술이 떡이 돼서….. ”

책과 노는 색다른 방법

요전에 헌책방 앞에서 잠시 앉았는데, 지나는 이가 헌책방은 한 번도 안 가봤다며 옆 사람에게 중고는 너무 더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선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팔자에 헌책방이 없는 걸 권한다고 될 일일까 싶어 말았다.
중요한 건 헌책방의 책들 대개는 더럽지 않다는 것이다. ‘더럽다’는 것은 손 떼 묻으며 자연스럽게 책이 낡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곱게 나이를 먹은 책과 전 주인에게 함부로 대해진 책은 확연히 모습이 다르다. 찢어지고, 비 맞은 자욱하며 볼펜으로 찍찍 마구잡이로 밑줄이 그어진 책을 상종하고 싶지 않기는 누구나 매한가지일 게다. 그래도 대개는 걸레로 한번 쓱 닦아 주면 새 책처럼 반짝이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 정도 수고는 즐길 수 있어야 헌책방이 훨씬 신나고 재미난 곳이 된다.
책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보고 마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 시절 신줏단지 모시듯 책을 대할 때가 있었다. 날마다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닦는 게 일과였는지라 앞의 수사가 그닥 민망하지 않다. 장정일처럼 책에 지문 묻는다며 손을 씻고 책을 읽은 것도, 초판만 고집하는 것도, 책에 볼펜 따윈 절대 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책을 닦을 때만큼은 나도 손을 닦았다. 열심히 닦고 빛나는 책을 보고 있으면 장서가니 애서가니 하는 휘장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헌책방 글을 마무리 지으며 이왕 쓰는 글 알뜰한 도움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다녀 본 곳 중 ‘어디 헌책방이 좋다더라’ 혹은 소개하는 것은 몫이 아니기도 하고 능력도 안 되는지라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말을 주섬주섬 담아 볼 참이다. 그러니깐 이 얘기는 헌책을 새 책처럼 만드는 나름의 노하우인 셈이다.

사고싶은 책 / 산 책

새로 나온 책들이 꽤 된다. 근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간 놓치고 간 것 중, 사고 싶은 게 몇 권 있다. 학교에 나가면서부터 한동안 멀찍했던 인문학 부문이 눈에 밟히고 ‘쫙’하는 소리에 베이고 싶다.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김덕영, 윤미애 옮김) / 새물결
「Die Zeit, Der Morgen」등의 잡지에 발표한 글과 「사회학, 사회화 형식들 연구」에 수록된 글을 선별해서 수록했는데, 짐멜은 19세기 당시 지배적이던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돈, 여행, 성, 종교, 얼굴, 편지 등과 같이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현상들을 철학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짐멜을 일면 깎아내고자 붙여졌던 ‘철학적 에세이의 대가’, 그의 글을 믿을만한 역자를 통해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다. 오래전에 짐멜의 『돈의 철학/한길사』과 『여성문화와 남성문화/이대출판부』가 번역됐으나 전자는 절판이고 후자는 단 4편의 논문만을 싣고 있어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한껏 가시길 바란다. 그런데 잘 몰라서 묻는 건데 Die Zeit 와 Der Morgen은 다른 잡지 아니었던가?
『법의 힘』 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우리에게 ‘데리다’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자체로 난해함과 더불어 오역의 탈로 멀기만 하다. 어찌하다 보니 보너스 포인트가 쌓였기에 내내 미루던 것을 주문했다. 진태원 씨의 번역이라 슬쩍 기대가 된다. 데리다 철학의 용어해설과 옮긴이의 주가 한가득 이고, 데리다를 이해하는데 일정 도움이 될 것이다. 『법의 힘』 2부에서 데리다는 ‘지배계급의 폭력에 대한 좌파의 대항폭력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했던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를 다루는데 부록으로 벤야민의 글이 실려 있다. 전에 자율평론에서 이성원 씨 번역으로 선보였었는데 새로운 벤야민의 소리 역시 기대가 된다. 그리고 1976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강연한 「독립 선언들(De’claraations D’independance)」도 함께 실렸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조만간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새로 번역되는 듯싶은데, 어서어서 나왔으면!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프랑수와 라블레 (유석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많은 분이 고대하던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이 대산문학 총서로 드디어 나왔다. ‘드디어’라고 말하기에는 꽤 시일이 지났지만 대산 총서 목록이 발행된 게 99년 즈음이었던 걸 참작하면 좀 늦은 소개쯤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은 한치는 늘었을 것이다. 이 문지판을 들췄을 때, 기존의 을유판(민희식 옮김)에 비해서 두께가 상당히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두께뿐만이 아니다. 해서 일정 부분을 을유판과 비교해 봤는데, 문지에서 완역본이라고 떠버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완연본이라고 하기에는 80퍼센트는 모자란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5서까지 있는데, 이번 번역에서는 1, 2서만이 번역됐을 뿐이다. 팡타그뤼엘 3, 4, 5 서는 어디다 내뺀 것인지(생트 뵈브의 라블레론도 없다). 또 하나 언젠가 연대에 들렀다가 친구의 꼬임으로 유호석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니 이런 사람이 라블레를 번역한단 말이야’라고 실망했더랬다. 그치만 문지판을 읽은 것은 아니니 번역의 질은 글쎄. 그래도 사고 싶다. 가로로 읽고 싶다.
『시집』 말라르메 (황현산 옮김) / 문학과지성사
모두 알 만한 시구,“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말라르메 ‘바다의 미풍’의 처음이다. 황현산 교수의 번역과 엄청난 각주로 말라르메가 우리에게 왔다. 기존에 숭실대출판부에서 이준오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었는데,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마티스의 판화가 시집에 함께 실려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하튼 『목신의 오후』만으로 갈증을 해소하던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소식이다.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말라르메의 노래를 들어라!” 꼭 사고 말 테다!
『중첩 』 들뢰즈 (허희정 옮김) / 동문선
2천 원 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샀기 때문에 아마도 후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극작가 카르멜로 베네의 「리차드 3세」와 들뢰즈의 「마이너 선언」이 함께 실려 있다. 들뢰즈를 통해서 베네를 알았는데, 베네는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者/性)문학의 의미에 쏘옥 들어맞는다. 허희정 씨 번역은 처음인데 이렇게 잘 읽히는 들뢰즈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역자의 노고로 들뢰즈의 『디알로그』가 곧 나올 텐데 기대 만빵이다.
『창조적 진화』 베르그손 (황수영 옮김) / 아카넷
베르그손이 번역 됐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창조적 진화는 전에 박영문고(정한택)와 을유(서정철)에서 두 번이나 번역됐음에도 결국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고 언젠가 학교 세미나도 참여했는데, 내 불어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을 뿐이다. 부디 번역도 진화하되 창조적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수영 교수가 요전에 냈던 『베르그손-지속과 생명의 형이상학/이룸』을 읽어본다면 이런 우려는 단지 우려에 그치겠지만. 덧붙여 『물질과 기억』도 누군가 다시 번역한다면 얼마나 이쁠까.
『희망의 원리』 에른스트 블로흐 (박설호 옮김) / 열린책들
솔에서 1,4권을 내고 세월아 네월아 하더니 열린책들을 통해서 완역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총 다섯 권인데, 가격이 9만 원이다.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사회주의를 하나의 진리로 취급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희망하는지, 미래에 무엇을 희망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미래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만큼이나 이 책의 운명도 기구하다.1956년 소련이 ‘헝가리 인민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한 데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블로흐는 이를 이유로 동독에서 반당분자로 낙인찍혀 모든 공직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된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는 중에 서독에서 휴가를 즐기던 블로흐는 자신의 원고를 들고 트뷩겐에 정착하는데 사회주의 미래를 담은 책은 사회주의 현실의 좌절과 함께 망명하게 된 셈이다. 블로흐를 처음 만난 것은 『철학 입문(a philosophy of the future)/청하』을 통해서였는데, 이 역시 진보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희망의 원리와 큰 축이 비슷해서, 그 중 일부일까 찾아본 적이 있지만 서지에 대해 확인을 할 수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맘을 구디 먹고 사려는 찰나, 엄하게도 『 Histoire de la vie privée/Seuil』 1-5 전질을 사는 바람에 기약이 없어졌다. 『사생활의 역사』가 처음 프랑스에서 발간될 때 값이 케이스 포함 2,000프랑이고 지금 유로화로는 권당 72.5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전질일 경우 대략 40만 원 이상인 셈이다. 그걸 샀으니 모든 책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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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랜지』 안소니 버제스 (박시영 옮김) / 민음사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많이 알려졌지만 원작은 더 훌륭하다. 이미 지학사(벽호)를 통해서 옮겨졌었는데, 역시나 절판이다. 지학사 판에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the wanting seed’가 ‘조직과 생명’이란 제목으로 옮겨져 있으나 이는 민음사 판에는 실리지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권미선 옮김) / 민음사
오래전에 울림사에서 박찬희 번역으로 나왔을 때(박경범이 옮긴 울림사 판이 아니다) 느무나 재미나게 봤었는데, 어떤 놈이 책을 납치해 갔다. 간혹 헌책방에 들를 때마다 미아를 찾는 심정으로 훑었는데, 연이 안 닿고 말았다. 그런 것이 작년 가을에 새로 번역돼서 나왔던 것이다. 알았더라면 겨울은 따뜻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나는 추위를 이유로 나다니지 않을 것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감개무량이다. 읽을 당시의 표현대로라면 따봉인 책이다. 저자가 직접 각색하고 알폰소 아라우가 감독한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정작 이 영화는 못 봤고, 키아누 리부스가 이뻐서 「구름속의 산책」을 엉겁결에 봤다. 아 「달콤 –」 이 영화도 보고 싶다. 어디서 다운받을 수 없을까? 에스키벨의 다른 작품인 『사랑의 법칙/민음사』은 소설만큼이나 CD가 매혹적인데 대체 워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꿈의 궁전』 이스마일 카다레 (장석훈 옮김) / 문학동네
지난 가을에 번역됐었는데, 역시나 모르고 살았다. 『죽은 군대의 장군』, 『돌에 새긴 연대기』, 『부서진 사월』,『H 서류』 등등이 꽤 오래전 번역됐고 게다가 죄다 재미있다. 외에 ‘2000년 국제문학포럼’의 논문집인 『경계를 넘어 글쓰기』에 아주 짧은 분량의「문학과 삶의 관계」가 실려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독재체제하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충성스러운 개들을 즐겁게 해줄 만한 그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작품 출판이 금지당했는데,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글쓰기는 아리엘 도르프만과 일면 닿아있다. 그의 책 중 『돌에 새긴 연대기』는 절판이지만 헌책방에서 그나마 자주 보이는 편이고 『죽은 군대의 장군』은 대형 서점 구석에 가면 여전히(?) 구할 수 있고, 나머지 책들이야 맘만 먹는다면!
『이방인, 신, 괴물』 리처드 커니 (이지영 옮김) / 개마고원
『이방인, 신, 괴물』은 그 제목에서 타자의 대표적인 형태를 총괄하고 있다. 레비나스, 데리다, 료타르, 크리스테바, 지젝, 하이데거 등을 아우르며 타자성 연구의 성과를 제시하는데, 리처드 커니는 ‘이방인·신·괴물’을 인간 심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균열의 증거로 보고 의식과 무의식, 친숙한 것과 낯선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에서 어떻게 분열되는지를 보인다.
20세기 후반 유럽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개론서 중 하나가 리처드 커니의 책이다.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한나래』와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한울』이 이미 번역됐는데 몇 부분의 오역을 감안하고서래도 읽으면 현대(유럽)철학의 지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는 총 3부로 사상가들과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말하기는 언제나 쓰기보다 쉽고 명확해 지기 마련이다. 대담은 질문자에 따라서 질 자체가 틀리게 되곤 하는데, 리처드 커니의 질문은 각 사상의 핵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역시 현상학, 비판이론, 구조주의의 훌륭한 주석서이다.
『천구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실비나 오캄포 (김현균 옮김) / 열림원
숨이 가빠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선 『탱고』에서 그녀의 「올리세스」를 보며, ‘왜 이런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지 않는 걸까’며 아쉬웠는데 무려 18편의 단편을 만나 볼 수 있다니 기대가 크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주변과 중심이 전복되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불온함과 잔혹성이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박거용 옮김) / 르네상스
가끔 죽은 작가를 선호할 때가 있는데, 더는 그의 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더 읽지 않아도 되고,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그 점에서는 꽝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보르헤스 전집은 역자였던 황병하 선생이 고인이 되면서 기획과는 달리 시는 포함되지 않고 따로 시집이 나오는가 하면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는 여시아문에서 나오고, 『픽션들/녹진』에 실렸던 산문들도 전집에는 안 보이고, 『상상동물 이야기』는 까치에서 울고, 그것들을 다 해치운 다음에야 전작주의자로서 겨우 안도를 하는데, 별안간 죽은 보르헤스가 문학을 말한 댄다. 뭔가 해서 봤더니, 보르헤스가 하버드에서 강연한 녹취를 풀어 편집한 책이다. 이거 참, 나아아중에 누군가 보르헤스의 전집을 다시 기획한다면 어떨까? 번역을 좀 더 다듬고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산문 강연 대담 등을 죄다 엮어서 말이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데이비드 하비 (김병화 옮김) / 생각의 나무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등으로 유명한 하비의 책이 새로 나왔다. 나는 그의 책을 겨우 두 권 봤을 뿐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어떤 책보다 명징하게 읽힌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공간의 배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해오던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파리’라는 도시공간을 분석했다. 도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자본 순환과정을 가장 고밀도로 집적하여 보여주는 공간이다. 자본이 지리공간에 미치는 영향과 그 지리공간이 다시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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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윌리스의 이 두꺼운 책이 부담되시는 분들은 『시간여행 SF 걸작선/고려원』에 실린 「화재 감시원」을 보시라! 죄다 읽고 말 테니. 읽고 싶은데 책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은 환상문학웹진에서 볼 수 있다. 다른 멋진 단편들도 덤으로!코니 윌리스의 작품은 외에도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열린책들』와 『세계여성소설걸작선/여성사』에 「섹스 또는 배설」과 「첫사랑」이 실렸고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에는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가 실려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라스 애덤스 (김선형, 권진안 옮김) / 책세상
기존에 새와물고기 판으로 4권까지 읽고 5권을 pc통신에서 다운받아 놓고는 말았더랬다. 1978년 BBC 라디오에서 6회짜리 드라마로 시작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엄청난 반향으로 책이며 음반 등등 별의별 것까지 다 나오게 된다. 처음에는 3권 완결이던 것이 팬들의 성화(?)로 어느 날 4권 완결이 되더니 결국 5권까지 나오게 된 책이다. 이런 ‘코믹’이라면 정신없이 웃다가 미쳐도 무죄다! 예전에 읽을 때 어찌나 웃기던지 학교에서 밥 먹다가 갑자기 ‘아서덴트’만 떠올랐을 뿐인데 밥알을 앞 친구에게 다 뱉어 버리고 말았다.(라블레 시대의 사람들도 어쩌면 가르강튀아를 보며 나처럼 뱉었을지도). 올해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지, 얼마나 사람들이 볼지도 의문이다. 81년에 BBC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고, 그 희귀하고 지루한 영상을 당나귀를 통해서 다운받을 수 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작년인가 다시 했었는데, 듣고 싶은 분들은 여기를! 그나저나 5권만 사면되니깐.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카를로 진즈부르그 (조한욱 옮김) / 길
미시사의 선구자로 일컫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책이다. 잘 알려진 『치즈와 구더기』보다 10년 앞서 발표됐던 것이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개작한 것으로 진즈부르그 저술의 출발점으로 알려졌다. 미시사는 아날학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적 방법론으로 대두됐던 것이다. 당대의 주류였던 프랑스 아날학파는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닌 구조 중심의 역사 서술 방식’을 내세우며 역사 서술의 관점을 ‘낮은 곳’ 으로 끌어내렸지만, 지나친 계량화로 인해 구체적인 ‘인간’ 이 빠진 역사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데 반해 미시사는 주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의 심성과 문화에 초점을 두면서, ‘역사가들이 침묵 속에 묻어버린’ 에피소드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끄집어내고 있다. 『미시사란 무엇인가』에서 진즈부르그의 민중문화론에 대한 논쟁을 시작으로 미시사에 관심을 뒀는데, 책과 멀찍했던 날들로 알콩한 밤의 재미를 잃었다. 밤 동안에 같이 둥글고 싶은 책이다.
이래저래 새로운 번역본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저작권 때문에 단 한 종의 번역서만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번역과 비교해보며 좀 더 정확하고 내 입맛에 맞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래 책들도 사고 싶다.
『포르노그라피아』 , 『페르디두르케』 비톨트 곰브로비치 / 민음사
『생각』 장정일 / 행복한책읽기
『사랑의 야찬』 미셀 투르니에 /문학동네
『정신분석 사전』 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 열린책들
『열하일기』 박지원 / 보리
『거기 당신?』 윤성희 / 민음사
『빨간 공책』 폴 오스터 / 열린책들
『막간』 버지니아 울프 / 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마틴 가드너 주석 / 북폴리오
『다이어리』 척 팔라닉 / 책세상

8명의 여인들 / 프랑스와 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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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되기

대개의 신화 기술과는 달리 ‘고르고’는 추악하고 무서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메두사는 고르고 세 자매 중 막내의 이름이다. 고르고들은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불멸하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메두사만은 죽을 운명이었다. 불멸의 종족에서 왜 하필 메두사만이 죽을 운명이었을까? 왜 신화 기술자들은 메두사를 죽이고자 했을까? ‘메두사’라는 어원을 찾아보면 ‘여성 지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글쓰기는(신화를 기술하는 것은) 위대한 자들, ‘위대한 남자들’에게 국한 된 것이었다. 그 남자들에게 ‘여성’과 ‘지배자’는 껄끄러운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메두사에게 ‘여성 지배자’의 의미를 거두고 죽을 운명을 부여하며 추악한 마녀로 탈바꿈시켰다.

메두사를 먼저 끄집어 낸 것은 8명의 여인에게서, 그들 각자에게서 메두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아버지라는 상징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 각자가 남성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영화를 본지 꽤 오래인지라 내게 남은 것은 앙상한 뼈대의 이야기뿐이지만 상상은 재현되기 마련이고 또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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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아침, 카트린느(뤼디빈 사니에 Ludivine Sagnier)는 등에 칼이 꽂힌 채 숨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고 밤새 개도 짖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전화선은 끊어져 있고 자동차는 시동이 안 걸리고 게다가 엄청난 폭설로 외할머니, 어머니, 이모, 두 명의 하녀, 언니 스종, 그리고 뒤늦게 들어온 고모까지 8명의 여인은 집 안에 고립되고 만다. 이들은 아버지를 죽인 자가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각자가 무죄를 증명하려 애쓴다. 단순히 시놉시스만을 보자면  폐쇄된 공간과 한정된 용의자 안에서 범인을 추리해내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연상하고 말겠지만 영화를 한 발짝만 떨어져 본다면 스릴러라는 장르는 영화에서 가벼운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결혼도 하기 전에 남자친구의 애를 가진 언니 스종(비에르지니 르도엔 Virginie Ledoyen), 엄마 게비(까트린 드뇌브 Catherine Deneuve)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형부를 사랑하는 노처녀 이모 오귀스틴(이자벨 위페르 Isabelle Huppert), 피에르트 고모(패니 아당뜨 Fanny Ardant)는 애인과의 여행비용으로 돈을 요구하고, 고모를 사랑하는 레즈비언 하녀 샤넬(삐어미네 리샤르 Firmine Richard), 하녀를 가장한 아버지의 정부 루이즈(엠마뉴엘 베아르 Emmanuelle Beart), 자신의 남편을 독살하고 유산을 가로챈 외할머니 마미(다니엘 다리우 Danielle Darrieux), 각자의 무죄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이 8명 여인에게서 드러난 진실은 추악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선에 함몰되지 않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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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이 아버지의 시선 밖에서 낱낱의 억눌렸던 욕망을 실어내는 각개가무는 시종일관 즐겁다.  이 각개가무는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영화서술에서 서술의 힘을 쥔 이들은 항상 남성이었다. 그러나 ‘8명의 여인들’에서 중간 중간 펼쳐지는 춤과 노래는 영화에서 여성이 드러나는 재현의 구조 즉, 관습적(남성적) 시선을 깨뜨리고 있다.  영화의 형식은 시선의 형식에 상응하기 마련이며 이 상응하는 시선은 다시 가부장적 지배구조에 상응하기 마련이다. 8명의 여인은 서술의 힘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8명의 여인 각자에게 주어짐으로써 관객 일반에게 제시되는 남성적 입장(시선)에서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펼치는 노래와 춤은 있는 그대로 여성들의 욕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지를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욕망하는 대상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인간다운 속성인지를 여성이 그 인간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밝혀지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실은 막내딸과 아버지의 자작극이었다. 아버지는 죽음을 위장해서 한집안에 같이 사는 여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를 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들의 욕망을 속속들이 알아버린 아버지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8명 여인들 모두가 아버지를 죽인 공범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영화 내내 즐겁기만 했던 여인들의 욕망이 아버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버지는 관객 일반과 마찬가지로 ‘욕망을 가지지 않은 여성은 자연스럽다’를 내재화한 인물이다.(관객 일반은 관습적 시선과 상응하는데 젠더로서의 남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적 시선이 내재화된 여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 아버지는 다름 아닌 ‘여성의 종신성을 운명 안에 틀 지움으로써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남성들의 다른 이름이고 그 상징에 다름 아니다. 영화 내내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아버지는 현실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가부장제와 흡사하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여성들을 그들의 욕망을 억압하고 저울질하는.

8명의 여인은 그 모두가 메두사이다. 다른 이들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욕망을 드러내며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지배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재현의 과정에서 여성은 항시 주체보다는 객체로서, 주체성과 힘을 상실한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8명의 여인들>은 변화 자체이다. 여성들이 타자로만 머물러야 했던 과거의 운명을 주체로 되돌리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상징을 돌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아버지의 눈으로 여인들을 바라보기를 멈추게 하고 있다. 욕망이 재현되는 곳은 더는 아버지의 눈이 아니다. 욕망을 가진 여성은 비로소 자연스럽다!

<8명의 여인들>공식 홈페이지

밑줄을 헤매던 날들

헌책방에서 만나는 ‘우연’이 차츰 쌓이면, 언제고 찾던 책이 눈앞에 있을 때의 떨림과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책이 주는 설렘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흥분된다’로 끝내기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오랜 시간 퇴적된 책 냄새, 그 빛바랜 종이에 눌린 시간이 한꺼번에 나를 들이친다. 그러면 몸이 훈훈해지는 게 어째 찬찬히 책을 살필 기운이 난다.
어느 때는 키보다 훌쩍 높아 벽이 되어버린 책들에서도, 구석 먼지에 홀대받던 곳에서도 주인을 기다리는 책은 꼭 있기 마련이다. 연이란 그치지 않고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 돌듯 닿는가 보다. 조우하게 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전 주인의 밑줄과 메모를 만나게 된다. 그런 메모와 밑줄이 헌책을 사기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책을 유일무이하게 하고 빛나게 한다.
퍽 오래전 헌책방에서 듬성듬성 마음을 잡는 책들을 쫓다가 고정희의 <이 시대의 아벨>을 어루만졌다. 책의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한겨울
1도씩 기울어져 가는
어머니의 허리 노동을
나는 이 시집으로 빼앗았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오래 사십시오.
1984. 3. 25”
나는 시보다 이 메모에 먼저 밑줄을 그었다. 이것은 여느 책에 딸린 유명한 작가들의 덕지덕지 한 찬사보다 훨씬 공명이 크다.
한때는 금서목록을 주욱 적어 놓고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재미를 가져보기도 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재미이고 책 사냥일 뿐이었다. 지금이야 어느 서점에서라도 구할 수 있다지만 <페다고지> 3년,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 2년이란 말이 농처럼 돌았다. 소지하고 있다가 걸리면 구속되고, 검찰의 구형이 각각 3년, 2년이었다는데 까마득한 얘기이다.
그것들을 헌책방에서 본 날이면 책장을 천천히 넘겨가며 메모들을 들춰보곤 했다. 고백건대 항시 비장한 글로 가득했던 그 사회과학서적을 나는 읽어낸 게 거의 없었고, 조금 지나서는 아예 들추지 않았다. 그냥저냥 재미가 없었고, 누렇게 해바랜 책에 유달리 붉고 선명한 밑줄은 넘어오지 말라는 금 같았다.
어느 헌책방에서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은 살아있다. 그 살아있음이 더 빛나게 될지 아니면 사장될지는 다음 주인의 몫일 테고, 책은 끊임없이 소용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닦아주고, 살피고, 손때가 묻어나야지, 책장을 메우기 위한 것으로만 남는다면 그 책장은 책의 무덤이 되고 만다. 책장은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책이 잠시 머물며 쉬는 곳쯤으로 남아야 한다.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면서도, 고른 책을 셈하면서도, 방 한구석에 책을 놓으면서 여기가 그들의 무덤이 아니길 바란다. 그 바람이 내 책 읽기를 독려하겠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놓아버리면 까마득해지리란 것을 안다. 책을 닦고, 목차를 훑고, 서문을 읽고, 새로 꽂힐 자리를 어림짐작해본다. 이것이 이 책들이 빛을 발하는 시작이기를 기대한다. 내 책장에서 오래 쉬지 않을 것이다.

The Birthday of the World

The Birthday of the World
어슐러 K. 르 귄의 「The Birthday of the World and Other Stories」세상의 생일과 다른 이야기들-을 선물 받았습니다. : ) 헤인 시리즈의 결정판입니다!!!? ;;;
Coming of Age in Karhide
The Matter of Seggri
Unchosen Love
Mountain Ways
Solitude
Old Music and the Slaves Women
The Birthday of the World
Paradises Lost
수록 된 단편 중 ‘세상의 생일’은 얼마 전에 번역이 됐고, 르 귄에게 네 번째 네뷸러상을 안겨줬던 solitude와 팁트리상을 받은 Mountain Ways와 The matter of Seggri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작품이 다수인데 Paradises Lost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발표하는 것이라네요.
즐겁냐고요? 물론이죠. 게다가 마구마구 설레고 있답니다. 🙂
조만간 리뷰를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