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다

설프게 비가 내린다.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부슬거린다. 숨책에 자전거를 묶어둔 것을 집으로 가져와야지 싶었다.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은 허벅지에 어떤 무리도 없다. 외려 바퀴에 딸려 발은 내 의지를 벗어나고, 바람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게다가 비까지 한몫하니, 속도는 거칠 게 없다.
‘비가 계속 오면 어쩌나’라고 생각 하는 순간 바퀴가 아스팔트를 엇나갔다. 왼쪽 무릎과 양손바닥이 듬성듬성 패였다. 살 껍질은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이거 참, 보고 있자니 아찔한데 그닥 아프진 않다. 상처는 보이지 않으면 이보다 덜 아프다. 피는 ‘아프다’라는 기의를 끌어내는 기표로서 작용한다. 보이는 것이 언제나 사실 그대로는 아니다. 에포케(epoche’)를 사회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 기대하기란 무리지만 보이는 것으로도 훌륭한 은유가 되고 그것은 어떻게든 행동을 유발시키니 그만하면 충분하다. 사실이라고 알던 것을 믿고 따라가면 사실에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알던 ‘사실’과 엄청난 괴리를 가진 ‘사실’이 조우하게 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어차피 병원에 가는 길이었고, 가는 김에 소독을 했다. 간호사는 ‘썩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한다. 내 몸도 확인하지 않으면 곯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고 보이는 상처도 아프지 않은데 하물며 타자를 염두 하면 아찔하다. 당신들도 나처럼 병들었어요!

몇 가지 거짓말

같은 사건들. 만우절이다.
“군사쿠데타로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라는 이대 김용서 교수는 “당신의 제자라서 부끄럽다”는 제자들의 침묵시위로 인해 수업이 끝나고 뒷문으로 줄행랑쳤다. 강의실에 들어갈 때는 다른 제자들에 둘러싸여 취재진을 피했다. 내란을 선동하는 김용서와 해방 이후 최대 거물간첩이라는 송두율 중 누가 더 위험한가? 며칠 전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서울중앙지법(이대경 판사)은 송두율 교수에게 7년 형을 선고했다. 송두율 교수는 정말 이 사회에서 공안검사 공안판사 공안기자들보다 더 위험한가?
객사한 아버지, 뇌종양의 어머니를 모시던 중학교 3학년의 여학생이 목을 맸단다. 소녀가장으로 살기가 힘들어서, 일본어도 컴퓨터도 음악도 기타도 배우고 싶다고, 하고 싶다는 유서가 남았다. 밥통에 동생들과 엄마를 위해 마지막으로 밥을 지었단다. 가난은 재난이다. 얼마 전 차떼기당은 한 달 이용료 4천2백만 원짜리 천막으로 이사했다. 아무 성과 없던 정략적 특검은 그 비용이 14억이 들었다. 17대 총선 충남 어디에 출마한 누구는 재산 신고 22억 7천9백만 원인데 5년간 낸 세금이 1만 4천 원이란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지부장 샤말 타파가 강제추방 되었다. 샤말 타파는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저지와 합법화를 위해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 지난 2월15일 법무부직원들에게 납치, 여수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 중이었다. 샤말은 납치 당시 인권침해와 보호소 내 인권침해로 국가인권위에 제소 중이었다. 국가인권위는 조사 중에는 강제출국은 있을 수 없다고 했으나 법무부는 모든 인권위에 군림한다.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에 있다가 잡힌 비두(방글라데시)는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서 강제 출국당했다. 샤말이 추방당한 네팔은 정부군과 마오주의자들 간의 내전이 한창이다.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은 139일째 계속 되고 있다.
교사의 여학생 폭행 동영상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난리다. 어느 선생이 여중생을 주먹으로 구타한다. ‘그럴 수도 있지’, ‘나 때는 저보다 더했어’, ‘저 정도도 맞은 거냐?’, ‘여학생도 잘못한 거 같다’라는 반응을 보면서 내가 사는 곳이 참 무서운 곳이라 곱씹는다.
그제 김동원 감독의 ‘송환’을 봤다. 보는 내내 인간의 품위를 지키자는 게 이렇게 처절한가 하며 아프고 부끄럽고 분했다. 하워드 진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품위가 지켜지는 작은 영역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언제나 간단한 답은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너무 쉬운 말들의 잔치는 지긋지긋할 뿐.
오늘 하루.
모든 것들이 만우절이라며 그냥 짓궂은 장난질이었으면 좋겠다.

평화교본 Friedensfibel

톰슨의 My Study가 위안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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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책상으로 돌아간다. 만약 투쟁하거나
꿈꾸거나 함께 할 수 있다면, 누가
책에 밑줄이나 그으며 이 밤을 지새우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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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가 「전쟁교본」의 후속 작품으로 쓰려고 했으나, 단 한 편의 시를 써 놓고 미완이 된 작품이 「평화교본」이다.

"
잊지 말아라, 너희보다 못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퉜다는 걸,
왜 자신들이 아니라 너희가 이곳에 앉을 수 있느냐고.
책 속에만 파묻히지 말고 함께 투쟁하여라.
배움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배워라, 그리고 그걸 결코 잊지 말아라.
"

중심을 잃고 나면, 보편은 없다. 실은 그 ‘사소하다’는 레토릭에 휘둘렸던 모든 게 중심이어야 한다.

병원

8시가 아직 한참인데, 휴대폰이 울린다. 낯선 번호인지라 갸우뚱하며 전화를 받는데, 119대원이란다. 응급실로 어머님께서 실려 간다는 소리가 다급하다. 양치를 하면서 해야 할일들을 정리한다. 이런 일에 허둥대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이다. 성심병원 응급실에 있다가 전에 수술했던 병원으로 옮긴다. 덕분에 신촌은 자주 들락거리지 싶다. 응급실은 밤새 술 마시다 속이 아파서 온 일행으로 도떼기시장 같다. 그런 소란이라니. 권지예의 ‘행복한 재앙’에나 나올법한 병원이다. 행복한!
CT 촬영동안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있는데, 어느 아저씨가 물리 치료를 받고 나온다.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모녀(짐작컨데)에게 ‘어이구 이산가족 상봉이네’하며 서로 즐겁다. 일가족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니 웃으면 안 되지 싶은데도 그닥 민망하진 않다.
2시가 다 되서야 결과를 가지고 의사와 면담을 하는데, 콩나물 냄새가 역하다. 수술비용이 칠백이라는 말에 그제야 덜컥 겁이 난다. 아서라 아서.
복도 컴퓨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10분간 자리를 맡고서 나는 주저리주저리 쓴다. 아무도 몰래 여길 떠야지란 다짐을 한 적이 있다. 그게 조금 미뤄지는 거다. 배가 고프다.
병실을 나오다 엄마 얼굴을 보는데 반칠환의 말 한 자락 가슴을 친다. ‘얘얘. 저 봐라. 창밖에 누구네 할머이 오셨다’
까칠한 엄마 손이 따숩다.

안경을 벗고 잠을 청하다 휴대폰 소리에 눈이 뜬다. 손이 가기가 멀어 벨 소리를 듣다 나는 지치는데 대체 누구인지 끈질기다. 천장을 멍하니 보는데, 하얀 벽에 우련 한 손자국들이 듬성듬성 있다. 내 방 천장은 반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했고 반은 실크 벽지이다. 그 무거운 벽지를 천장에 바를 때 고사리 같은 손들이 엉겨 붙었다. 풀 묻은 손자국이 남아서 ‘이거 닦아 야지요?’ 말했어도, 우리가 아니라면 저 자국들이라도 지금을 기억해야지 하고 내비 뒀었나 보다. 나이를 먹었고 떠밀리며 잊었다. 안경을 쓰고도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외려 흐릿한 나안이 되어서야 기억을 친다. 내 난시처럼 기억도 가물 한데 그래도 너희 얼굴이 있다. 잘 지내지들?
“웅기야 날이 여전히 춥다. 벌써 상병이네.
꼭꼭 숨은 은경아 졸업 축하한다.
주영인 생일이네 축하한다.
근미야 어서어서 리뉴얼 해야지? 나도 은혜 갚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윤경아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거야. 힘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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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술자리였나. 결혼을 앞둔 선배가 말한다.
“정말 내 여자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
이미 결혼한 선배가 거든다.
“머더러 이해 할라싸냐, 그런갑다 하고 외워야지.”
대체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어, 나야말로 외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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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날 땐 초콜릿을 먹어요, 나는 초콜릿과자를 좋아해요, 나는 모더니즘 계열의 단편소설을 좋아해요,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나는 사전 찾아보는 걸 좋아해요, 작은 꽃들을 좋아해요, 저녁 대신 군것질로 때우는 걸 좋아해요, 기승전결의 사실주의 소설을 싫어해요, ….”
‘체리 주빌레’를 좋아한다고 했었나, 인연을 믿는다고도 했었나?
저는 무엇이든 아니지만, 잘 외워요. 눈이 와요 할말이 생겨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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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3
강남역 사거리에도
신촌 뒷골목에도
이문동 철길 옆에도
눈이 내린다.
눈이 닿는 곳 어디나
한 폭 그림이 된다.
9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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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틈으로 바람이 차다.

3월 20일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고귀한 자산을 던져버렸다. 국기와 국가가 잘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개인이 거기에 반대할 권리 말이다. …….. 그리고 그와 함께 애국심이라는 기괴하고 웃기는 낱말에서 정말로 존중할 만한 모든 것도 버렸다.”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에 대한 몇 마디와 “3월20일 반전행동에 손잡고 가요”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괜스레 말을 늘리다 밥이 탔다. 내 밥.. ㅠㅠ 여하튼 반전평화를 외치던 양심들은 얼토당토않은 애국심에 묻혀 가려졌고 석유 확보와 무기 소비를 통해 자국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려는 부시의 광기는 여전하고 거기다 경제경제 나발불며 좋아라 따라가는 놈들이라니.

나야 아등거리며 할 수 있는 게 3월 20일 함께 가자고 말하는 게 다다. 아무도 3월 20일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그 야만의 세력들에게 보여줘야지!!! 손에 손잡고 시청앞으로!!!

돌베게에서 출간된 마크 트웨인 전쟁을 위한 기도 중 36 – 85페이지를 옮긴다. 존 그로스의 삽화가 함께 들어 있는데 케테 콜비츠를 좋아한다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지 싶다.

“O lord our God,
오,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help us to tear their soldiers to bloody shreds with our shells;
우리를 도우시어 우리의 포탄으로 저들의 병사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 흘리게 하소서.

help us to cover their smiling fields with the pale forms of their patriot dead;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청명한 벌판을 저들 애국자들의 창백한 주검으로 뒤덮게 하소서.

help us to drown the thunder of the guns with the shrieks of their wounded, withing in pain;
우리를 도우시어 천둥 같은 총성을 저들의 부상병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내지르는 비명 속에 잠기게 하소서.

help us to lay waste their humble homes with a hurricane of fire;
우리를 도우시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포화로 저들의 누추한 집들을 잿더미로 화하게 하소서.

help us to wring the hearts of their unoffending widows with unavailing grief;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죄 없는 과부들이 비통에 빠져 가슴 쥐어뜯게 하소서.

help us to turn them out roofless with their little children to wander unfriended the wastes of their desolated land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이 집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흙바람 이는 황폐한 땅을 의지가지없이 떠돌게 하소서.

in rags and hunger and thirst, sports of the sun flames of summer and the icy winds of winder,
누더기를 걸친 채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겨울에는 살을 에는 한풍에 노리개가 되어

broken in spirit, 영혼은 찢기고

worn with travail, 노고에 지친 몸으로 헤매게 하소서.

imploring Thee for the refuge of the grave and denied it
주님께 안식할 무덤을 간구하더라도 거절하시고

for our sakes who adore Thee, Lord, 주님을 경모하는 우리를 위하여

blast their hopes, 저들의 소망을 산산이 날려버리시고

blight their lives, 저들의 생명을 시들게 하시고

protract their bitter pilgrimage, 저들의 비참한 순례가 끝나지 않게 하시고

make heavy their steps, 저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시고

water their way with their tears, 저들의 눈물로 저들의 길을 젖게 하시고

stain the white snow with the blood of their wounded feet!
저들의 상처투성이 발에서 흐르는 피로 흰 눈을 얼룩지게 하소서.

We ask it, in the spirit of love of Him Who is the Source of Love,
우리는 그것을 바라나이다.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께.

and Who is ever-faithful refuge and friend of all that are sore beset
곤고한 처지에 놓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당신의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에게

and seek His aid with humble and contrite hearts.
항상 믿음직한 피난처요 친구이신 주님께.

Amen 아멘."

2월 달력을 넘기면서 끄트머리 글을 가져온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3월은 힘차게! 으쌰!

고기파티 등등

점점 요상한 기능만 하나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른쪽 위에 9px | 10px | 11px 가 보이시죠? 바디부분의 폰트를 조절해 줍니다. 다른 곳은 그닥 불편할 것 같지 않아서 그대로 뒀고, 내용부분만 폰트 적용이 되게끔 했습니다. thegirliematters의 소스를 그대로 베꼈는데, 자바스크립트도 css와 마찬가지로 링크를 통해 불러 오고 있더군요. 전체적으로 소스가 말끔해 질 수 있겠지만, css도 헤매고 있는지라 천천히 봄이 오면 정리도 할 겸 시험해 볼까 합니다. 정리 혹은 리뉴얼에 대한 압박은 이 블로그가 익스플로러 전용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다른 창과 호환이 안 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특히 모질라에서는 절망적이지요. Links 맨 아래에 Random Blog를 달았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등록 된 곳들 중에 아무곳이나 가게 됩니다. 재밌겠죠? ;;;
다른 블로그를 볼 때마다, 역시 기능보다는 내용이야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까딱거립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깨닫곤 하죠. 얼마나 게으르냐면 깨닫기’만’ 합니다.
아시는 분들만 아시겠지만 어제의 고기파티는 성황리에 끝맺었고, 남은 고기는 목요일쯤해서 마저 해치울까 합니다. 회비는 현지, 근미 자매가 다 낸 관계로 목요일 날 오시는 분들은 양심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남 몰래 후원해 주신 어머님께 감사를.
아침에 밑반찬을 몇 가지 준비해 주시면서 누구누구 오냐고 묻더군요,
“재홍이가 올 것 같아요“
“재홍이 여자친구도 같이 오니?”
“그렇죠 같이 오겠죠”
“그래, 니 여자친구도 오니?”
“………………………….(엄마 전 여자친구가 없어요…)…….”

기억

커피포트를 밖으로 내놨다. 방안에 커피 향이 잔잔한 게 며칠은 좋더니 놈팽내와 합쳐져 궁상스럽다. 그보다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는 듯해서 줄여볼까 하는 심산으로 손이 덜 가는 곳으로 치웠다. 올 들어 비운 커피만 어제로 1200그램을 넘겼다. 약탕기도 아니고 계속 지글지글 끓는 포트도 고생스러웠을 게다. 내 속이 아픈 줄 모르다가 ‘아니 내가 입맛이 안돌다니’란 생각을 짚다보니 아무래도 원인이 커피였지 싶다.
관계란 언제나 일방향이다. 나는 말하고 너는 듣는다. 너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동시에 말할 순 있어도 동시에 들을 수는 없다. 내가 그 잠깐을 기다릴 줄 알았다면 혼자서 ‘동시에 들을 수 없는’ 적막을 예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유도 공원을 걸으면서, 나는 내내 ‘기억’에 대한 생각을 한다. 오래 멀찍이 떨어진 것들은 미화되고 근래의 안 좋은 일들은 부쩍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요전의 일들을 먼데의 기억으로 위안받고 있는 셈이다. ‘선택적 기억’이라면 이왕 위안모드로 돌아가는 게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기억이란 게 꼭 향기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고 아프다. 나는 네가 곁에 있으면 그립지 않을 것이다. 부재야 말로 기억의 숙주이다.
그림을 그려야지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렸을 때 내가 문득거리며 등을 톡톡치며 알은체한다. 나는 반갑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