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friends.
I am crying and shaking from head to toe with rage and grief. so forgive me for sending this. But everyone should know what is happening in lebanon. And this will not happen through the mainstream corporate media.
the following message was sent by Hanady Salman, an editor at a local lebanese newspaper As-Safir:
“Dear friends and colleagues ,
You will all have to excuse me for sending this. It’s pictures of the bodies of babies killed by the israelis in South lebanon. They are all burnt. I need your help. I am almost certain these pictures won’t be published in the West, although they are associated press pictures. I need your help exposing them if you can. The problem is these are
people who were asked to leave their village , Ter Hafra , this morning , within two hours , or else.
… So those who were able to flee went to the closer UN base where they were asked to leave. I think that after the Qana massacres in 1996 when civilians were bombed after they took chelter in UN headquarters ,
the UN does not want to be responssible for the lives of civilians. A FEW MINUTES AGO , the Israeli asked the people of Al Bustan village in the south to evacuate their homes. I am afraid massacares will keep happening as long as Israeli actions are uncheked. Please help us if you can
Hanady Sa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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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함께 원래 죽은 아이들의 사진이 있었어요.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도, 사진을 올리면서도 다만 전쟁에 대한 분노밖에 없었어요. 조금 지나서 덩야핑님의 글을 읽었어요. “사진 속의 죽은 사람들과 사진을 보는 사람에 대한 폭력”이라는 말에서 정말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사진을 직시하기를 바랐다’고 그게 ‘더 불편했다’고 덩야핑님의 글에 댓글을 달았어요. 이제 와 고백하건대 변명과 자기방어에 지나지 않았어요. 다시 이 사진을 봤을 때, 덩야핑님과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돌아보고 덩야핑님의 말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 다행이에요. 그리고 이 구석에서 덩야핑님께 고마워해요. 분노밖에 못 봤다면 저는 많은 것을 놓치고 갈 뻔했어요.
– 2006. 08. 06.
[카테고리:] Monologue
준비된 며느리?
어느 대학에 걸린 현수막이다. 마땅히 축하 받고 축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준비된 며느리”라고 칭할 때, 한 개인의 다양한 역사와 정체성은 생략되고 없다. 그 과정에서 주체로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소멸되고 만다. 소멸된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뜬금없이 ‘결혼’을 통해 ‘아내’이거나 ‘며느리’거나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사회에 귀속된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전문직 여성이면서도 “준비된 며느리”로 한정 지어지는 것은 여성이 이 사회에서 ‘여성’이며 동시에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동절
말하자면 ‘하이서울페스티벌’ 같았다. 다들 혹시 남몰래 빡신 전야제를 치르고 온 겔 까, 대체 워디서? 분위기는 앰프와 마이크 소리만 쩌렁하고 전반적으로 푸욱 가라앉았다. 무대의 영향이 큰 건가? 지난 노동자대회 때 붉어졌던 문제로 문화패와 민주노총이 담쌓은 건지, 그간에 어쩐 일이 더 있었는지 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수도권 문화패는 무대에 안 섰다. 우리나라, 희망새 등등이 합창을 하긴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와서 ‘일하는… 아빠 사랑해요’만 찾다가 들어가 버렸다. 흥, 2절에서라도 ‘엄마’가 나오나 했지만 2절이 없는 노래더라. 얘들아 그 무대에서 둘러보렴. 엄마도 일한단다. 밖은 차치하고 엄마가 집에서 하는 일로 급료를 주면 이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만 불을 진즉에 넘었을 게다.
그냥저냥 작은대안무역으로 바쁜 와중에, 폭죽이 터지고 애드벌룬이 쭉 올라가기에 ‘와’ 했는데 보이는 건 하이서울이요 그 사이 풍선이 하나 뜨더라. 노란 풍선이~ 그 참 ‘하이서울’ 좀 하루 떼지.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다 보니 평일 노동절에 쉰다는 게 언감생심이다. 많이 못 만나고 몇몇 이주노조 활동가들만 봤을 뿐인지라 꽤 아쉽다.
작은대안무역 – 공중캠프
오늘 홍대 공중캠프에서 작은대안무역이 열려요. 방글라데시에서 새로 보내온 옷들과 이쁜 액세서리 등등을 만 날 수 있답니다. 갑자기 한 사진 작업이라 실제로 보는 것이 훨씬 예뻐요. 옷 마다 디자이너와 만든 이가 표시 돼있고, 하나하나 직접 염색하고 손바느질한 작품들이에요. 작은대안무역의 옷들도 구경하시고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어 가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방송 1주년도 축하해주세요.
이주노동자의 방송 1주년 파티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1주년 기념파티가 있습니다.
약도를 보면 대강 어디쯤이라 짐작하시겠지만 홍대전철역보다는 신촌전철역에서 걸어오시는 게 조금 더 빠릅니다. 7011, 271 버스를 이용하신다면 산울림 소극장 앞에서 내리면 됩니다. 뭐시냐 고기 집들 쭉 늘어진 기찻길 있죠? 바로 그 라인입니다. 드.디.어. 작은대안무역도 오랜 겨울 방학을 끝내고 기지개를 켭니다. 바깥 활동이 없는 동안 서로 많은 고민을 나눴는데 그 고민들이 활동 속에서 확장되고 변화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노동절(서울 시청 앞)과 전야제(없나요?)에서도 봐요~!
아노아르 석방
오늘 몇몇이 청주 보호소 아노아르 면회를 가기로 했다가 사정상 다음으로 미뤘었다. 그러던 차에 아노아르가 풀려난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목동으로 갔다. 지난해 5월 14일 강제연행 되고나서 지금까지 보호소 감금으로 건강이 심하게 나빠져 보호해제 된 것이다. 그가 있던 청주외국인보호소는 청주교도소의 한 부분이다. 말이 보호소이지 실제로 감옥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출입국 관리법은 구금된 미등록 이주자들의 보호소 감금을 20일을 넘지 않게끔 하고 있으나 아노아르가 구금된 기간은 그 20일의 17배에 달한다. 이주노조를 죽이기 위한 표적단속이었다는 점과 연행 당시의 출입국의 폭행 등등을 두고 행정소송을 진행할 때부터 보호해제로 나왔어야 함에도 340여 일을 불법적으로 감금한 것은 한 개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아노아르는 그 1년 가까운 보호소 생활로 당뇨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로 기억장애까지 얻은 상태이다.
바깥에서 다시 아노아르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다. 어서 건강이 회복되고 이 투쟁을 이어갔으면 그리고 악착같이 이기기를 바란다.
출입국에 꽃다발을 들고 올 날이 생길 줄이야. 비루님과 함께 준비한 꽃다발이다. 아노아르를 기다리는 중에 연대단위 몇몇 남정네들이 ‘꽃다발은 여자가 줘야지’라는 발언이나 ‘기쁨조’운운하는 꼴을 보면 싸워야 하는 대상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연대하되 저 대책 없는 남정네들끼리의 연대는 끊으면서 가야 하는 것은 이판저판 다를 게 없다.
연대단위와 출입국 간에 절차문제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500만 원의 보호해제 보험금을 내고 드디어 아노아르 이주노조 위원장이 나왔다.
비루님께서 만든 피켓, 아름다워라~ ‘보호해제 흥, 숨어 버릴 거야’라고 했다가 약하다는 말에 ‘투쟁할 거야’로 바꿨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조금 웃었는데, 연대단위와 출입국 간의 실랑이라는 것이 ‘뭐 그리 절차를 일일이 따지고 챙기느냐는 것’이었는데 이런 절차가 하나 더 생길 줄이야 🙂
슬픈 기쁜 생일
4
이 꿈에서 저 꿈으로
마음은 옷을 벗고
늙은 살 늙은 말(馬)
아아 병이 올 것 같아
기어갈 힘이 없어
따뜻한 무덤 속에 들어가
감기가 들면 감기약을 먹고
누군가 죽으면 부의금을 내리라
5
아무도 없다
누구나 가 버린다
그리고 참으로 알 수 없는 날에 나는
또 다시 치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고,
가리라
저 앞 허공에 빛나는 칼날
내 눈물의 단두대를 향하여
아픔이 아픔을 몰아내고
죽음으로 죽음을 벨 때까지
마침내 뿜어오르는 내 피가
너희의 잔에 행복한 포도주로 넘치고
그때 보아라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여
내가 내 뿌리로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것을
나의 불모가 너희의 영원한 풍요가 되는 것을
그리고 마음껏 기쁘게 마셔라
오늘의 나의 피, 내일의 너희의 포도주를
기침을 하며 최승자를 읽는다. 기침을 할 때마다 단전에서부터 양 어깨까지 가슴팍 전체가 아프다. 겨우 몇 행을 읽고 나면 벌어진 생살을 굵은 소금으로 절인 뒤 쥐어짜는 것 같은 기침이 난다. 마음으로 견디지 못하는 것들은 몸으로 견뎌야 하는 법인데, 밑천인 몸을 너무 번 놓고 말았다. 며칠 아프면서 내 몸부터 사랑하자고 그러면서 살자고 내내 벼기면서도 내 몸을 사랑하자는 게 퍽 설다.
기침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나갔다. 동생 부탁으로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 달라는데 점원이 “신분증 보여 주세요.”라고 말한다. 마스크를 내렸다. 점원이 “죄송합니다.”란다. 덩달아 나도 “제가 죄송해요.”라고 말한다. 아씨 죄송할 게 뭐람.
19일 출입국 앞 집회
동계현장 활동투쟁의 마지막 날 출입국 앞 집회에 다녀왔어요. 이주노조를 비롯한 전철연 전해투 학습지노조 성진애드컴 등등 많은 연대단위 분들이 모였고,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그보다 늦게 집회가 시작돼서 주욱 함께 할 수 있었네요.
오늘 집회 중에 몇 가지 당황하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출입국 관리소장의 차가 나가겠다고 집회대열의 한쪽 길을 비키라는 데서 시작됐어요. 정당하게 집회신고를 한 것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출입국소장차가 나가겠다고 비키라니 기가 찰 일이죠. 출입국 차가 나가기 전에는 차가 들락거릴 때 길을 터주곤 했었어요. 그런데 출입국 소장의 뒤에 있던 차들이 빵빵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시하고 집회를 진행하는데, 뒤차에 있던 어느 아저씨가 나오더니 나가야겠다고 비켜달라고 하며 언쟁이 시작됐고, 같은 이유로 다른 시민들과 계속되는 마찰이 생겼죠. 옆에 경찰들이 있었음에도 집회대열과 몇몇 시민들 간의 충돌을 훔훔한 모습으로 몰라라 하는 경찰들의 행동은 비열하기 짝이 없더군요. 한겨울에 아스팔트로 내몰려서 살자고 니네만 배부르고 등따습지 말고 우리도 좀 살자고 하는 사람들한테 와서 바쁘니 길 좀 트라고 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한참 지나서야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집회가 계속될 수 있었어요.
오늘 집회에 있던 동지들의 분노를 잘 알고 있어요. 그 분노에 더 많은 사람이 지지를 보내고 함께하고 악착같이 사리 물고 이어가자면 우리가 이 자리에 선 근본적인 문제와 그 정당성도 중요하겠지만 분노가 뻗어가는 방향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을 하게 돼요. 화를 내지 말고 싸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잊지 말자는 것이죠. 우리가 분노하는 방식이 우리의 문제의식을 더 빛나게 할 수도 아주 감춰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목사님은 결의문 낭독을 하게 됐는데, 열심히 준비 중이네요.
이화여대 몸짓패 ‘투혼’
연영석 동지 “…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과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
이주노조 까지만 동지
이주노조 마숨 동지
헌걸찬 전철연 동지와 이주노조 토너 동지
결의문 낭독 중인 목사님
아주 시원시원한 발언 멋졌어요~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서 주먹 불끈 쥐는 심정을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렸으면 제 길 바쁘다고 비키라는 헛나발은 못 할 텐데 말이죠.
허거프다
‘허거프다’는 ‘허전하고 어이가 없다’는 뜻이다. ‘허전하다’는 ‘서운하고 텅 빈 느낌이 있다’는 말이고, 다시 ‘어이’는 ‘어처구니’를 뜻한다. ‘어처구니’는 ‘맷돌 손잡이’의 다른 말이기도 한데 맷돌을 돌리려는데 손잡이가 없으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뒤섞인 기억이라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허거프다’를 좀 더 길게 풀어보면 ‘서운하고 텅 빈 느낌에 어처구니가 없다’란 뜻이 된다. ‘헤프다’, ‘슬프다’, ‘어설프다’처럼 ‘-프다’가 들어간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뜻을 지닌다. 오래 말할 힘은 없고 지금 딱 심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허거프다.”
조금 있다가 11시에 목동 출입국 앞에서 이주노동자 집회가 있다. 많은 동지들을 보게 될 텐데 ‘동지’란 말이 허릅숭이들의 ‘수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티마인
pc통신을 시작할 때부터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할 것 없이 써왔던 닉이 있다. 인터넷이 한창일 때 온갖 사이트도 이 아이디로 가입을 하곤 했는데, 처음 빠꾸 맞은 게 네이버에서였다. 제 작년인가 naver에 가입을 하려는데 글쎄 이미 있는 아이디란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잊은 줄 알고 한참을 헤매다가 정말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굴까 퍽 궁금하다 말았는데, 민중의 소리 블로그와 바이러스 블로그에서도 antimine 이라는 아이디를 봤다. 대체 누굴까.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안티마인 이라는 아이디를 만들었을까. 내게 anti mine은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너의’ 집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로 시작됐다. 내 것이라고 알게 모르게 이름 붙여진 것들, 관성이 되고 습관이 돼버린 삶, 거기에, 깊게 팬 흔적에 고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기표만 남아서 우왕좌왕 떠돌고 있다. 그들은 안티마인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