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메일 좀 확인하라는 소리를 끈질기게 듣다 지쳤다. 그래 확인 하마. 덕분에 몇 달간 몰라라 하던 것들을 뒤적이다가 ‘도메인 연장신청’에 관한 메일을 봤다. ‘아, 내게도 홈페이지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궁금해졌고 와봤다, 그간 변한 게 없구나. 사시나무 떨듯 기지개를 켜고 담배를 물었다.
[카테고리:] Monologue
강제추방반대 쿠키를 드세요.
믹스라이스의 지은씨가 만든 프라이팬이에요. 이걸로 만든 쿠키를 먹으면 뭉클할 것 같죠. 22일 11시부터 쭉~ 서강대 도서관 옆에서 작은 대안무역이 열리는데, 이 때 맛보실 수 있어요. 23일 2시부터 국가인권위 앞에서 이주노조 집회가 있는데, 이 때도 이 프라이팬으로 만든 쿠키를 먹을 수 있고, 먹다 남은 것은 국가인권위로 보낼 생각이랍니다. 지은씨의 이런 생각이 아주아주 즐거워요. 외에도 작은 대안무역은 9, 10월 동안 여기저기서 계속 된답니다. 그때 마다 이런저런 구경도 할 겸, 쿠키도 먹으면서 즐거운 난장에 함께 하세요.
작은 대안무역에서는 방글라데시의 자히드 공동체에서 보낸 옷가지/액세서리와 함께 지난 8월부터는 샤말 타파가 보내준 네팔의 옷과 액세서리, 네팔의 라디카 동지가 만들고 있는 비즈공예품 등을 함께 판매 하고 있어요.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도 작품들을 따라 빛나는 것 같아요. 부스에서 아는 척 하세요, 이것저것 덤으로 마구마구 드릴게요. 마음이래도. 🙂
작은 대안무역 일정 – 쿠키고 드시면서 이쁜 작품들도 감상하시고 비장의 실크스크린도 준비하고 있어요. 실크스크린은 기빙엑스포 기간 동안만 할 예정인데, 티셔츠나 옷가지를 가지고 오시면 거기에 글씨를 새겨드려요. ‘No war’, ‘Stop crackdown’ 또는 당신들이 원하는 아무 글귀나, 당신들의 옷에 당신들의 마음을 새겨보세요.
9월 22일 11시 – 5시 서강대 도서관 옆
24일 서울역 반전국제행동 ?
30일 7시 이프 – 여성전용파티(피도눈물도없는밤) – 선유도 공원 (이 때는 판매는 안 된다고 해서 작은 대안무역의 작품들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여성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서 맛난 것을 딥따 많이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작품들 구경도 하고 배부르게 먹기도 할 수 있다니 당신들이 부러워요)
9월 30일 ~ 10월 2일 11시 – 7시 대학로(부스는 흥사단 앞 정도) 기빙 엑스포(이주노동자 방송국, 버마행동과 함께해요.)
10월 3일 나눔 꽃 아시아 문화축제 – 파주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해요.)
8일 제7회 월경 페스티벌 – 홍대 (‘피자매 연대‘와 함께해요.)
작은 대안무역은 판매뿐만 아니라 함께할 활동가 분들을 기다려요. 언제든지 오셔서 같이 신나고 유쾌하게 진탕 놀아 봐요!
불법체류자 그리고 난민
버마행동(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며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 대표 뚜라와의 만남
한국의 한 세기와 퍽 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 독립운동과 군부독재 그리고 민주화 운동. 다른 점이 있다면 버마는 세기를 넘긴 후에도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투쟁은 버마 안에서 뿐만 아니라 타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뚜라씨가 이주한 한국은 “누구 보다 닮아서 누구보다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말을 담을 곳이 없는 사회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단지 ‘불법체류자’일뿐이다. 뚜라씨를 비롯한 많은 버마 이주(노동)자들은 버마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와도 싸우고 있고, 그 투쟁은 좀처럼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간허가 중단하라!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버마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1962년 네윈(Nay Win)이 이끄는 군사쿠데타로 인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그 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군사독재로 인하여 버마 전체가 피폐해졌고, 현재는 아시아 최빈민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간에 일어난 군부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88년 8월 8일 군부독재에 대항한 전 국민적 항쟁이 있었는데 약 3만 명 정도가 희생당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디페인(Depayin) 대학살과 군대에 의한 집단적인 샨(Shan)주 여성강간은 비단 그 지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곳만 조사가 됐을 뿐이다.”
‘샨 여성 실천 네트워크(The Shan Women’s Action Network – SWAN)’는 버마군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자행된 강간 사례를 기술한 “강간 허가증(License to Rap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판한 바 있다. 2002년 발간 된 보고서(1996년부터 2001년까지 조사)는 샨주의 625명(이후 2004년까지 조사에서 188명의 사건이 추가)의 여성들에게 자행된 173건의 강간과 다른 형태의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간의 83%는 군 사무관들의 의해 부대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65%는 집단강간이었다. 강간을 당한 25%의 여성들은 사망했으며, 시신이 그 지역공동체에 상세히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 강간 피해 여성 중 30%는 18세 이하였으며 가장 나이가 어린소녀는 8살이었다. 이 ‘문서화 된’ 사건 중 단 한 건 만이 상급 지휘관에게 처벌 받았을 뿐이고, 오히려 제보자들이 버마 군에 의해 감금과 고문,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버마정부의 인권유린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마을은 마을 사람들보다 군인들이 더 많기도 하다. 여자들이 강간에 무방비로 노출 돼 있다면 남자들의 경우는 강제노역에 끌려가게 된다. 마을에 군대가 들어오면 막사를 짓는 것부터 해서 그들이 먹고 살 모든 것을 마을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 군대가 마을을 떠날 때, 남자들의 경우는 그들의 짐꾼으로 이용된다. 군대가 가지고 이동하는 짐 중의 상당수는 마을에서 약탈한 물건들이고, 짐꾼으로 끌려간 대다수의 남자들이 전염병이나 노역에 시달려 죽게 된다.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처음부터 남자들을 불러내서 반정부군이 아닌지 몰아붙이고 그 자리에서 죽이기도 한다.”
버마군사정부는 외부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군대를 증강시키고 있고, 버마 국민들의 보건과 교육애는 국내총생산(GDP)의 1%도 안 되는 비용을 쏟는 반면 국방비로 4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버마 정부군의 수는 강제징집을 통해 두 배로 늘어 40만을 훌쩍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세계 15위 규모이다.
“디페인(Depayin) 학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학살당한 후 냇가에 죽은척했던 몇 명만이 살아서 증언했을 뿐이지만 당시 군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8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군대는 승려와 마을 사람인척 위장해서 그 학살을 벌였다. 그들이 그렇게 위장한 것은 아웅산 수찌 여사와 NLD(버마민주민족연맹)를 흡사 승려와 국민들이 반대해서 죽이려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2002년 5월 6일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찌여사는 전국을 돌며 NLD에 대한 지지와 버마군사독재에 항거할 것을 호소했다. 아웅산 수찌에 대한 버마 국민들의 지지가 점차로 확대되어 갈 때, 2003년 5월 30일 디페인에서 아웅산 수찌와 NLD의 부의장인 우틴우(U Tin Oo)를 비롯한 NLD의 지도부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다. 버마 정부는 약 1000명의 아웅산 수찌 여사의 지지자들과 5000명의 반대 세력 간의 충돌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을의 인구는 500명 안팎이었고, 마을사람들과 아웅산 수찌 지지자들은 합쳐야 1000명 미만 이었다. 5000명의 폭도들은 군부와 그들에 의해서 조직된 사람들이었고 비무장이었던 아웅산 수찌 여사와 그 지지자들을 향해 쇠봉 쇠못 죽봉 등등을 이용해서 공격했다. 버마군사정부와 국제사회는 디페인 학살에 대해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고 단지 NLD와 버마의 몇몇 단체들만이 조사보고에 착수했을 뿐이다.
불법체류자인가 난민인가
“작년 5월에 난민신청을 냈다. 일주일후 한차례의 조사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묵묵부답이다. 1년이 넘는 동안 몇 차례 출입국에 연락을 해 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았고 이제는 연락도 잘 안 된다. 또 실태 조사를 하면서 통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문제가 돼서 직접 통역을 하겠다고 나서봤지만 출입국에서 거부하곤 했다.”
한국정부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후 2000년까지 단 한 명의 난민도 허용하지 않았다가 2001년에 들어서 1명을 인정하고, 현재(2005년 7월 기준) 39명이 난민인정이 된 상태이다. 지금까지 301명의 난민 신청자가 있지만 인력부족을 핑계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인력부족’은 05년 8월16일 출입국에서 한 말이고 이것이 한겨레를 통해 가시화 됐을 때 출입국은 소위 보도해명자료(05.8.23)를 통해서 ‘난민심사 업무는 법무부 출국관리과에 2명 및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2명이 전담하고 있고, 기타 전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41명의 겸임요원을 지정·운영’하고 있다고 이의 제기를 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더 큰 문제점이다. 다시 말하면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이들과 난민신청을 담당하는 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버마행동에서 나를 비롯해 11명이 난민신청을 했지만 2명은 신청자체를 거부당했다. 그들은 불법체류 벌금을 내야만 신청접수를 받겠다고 하는데, 이는 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출입국이 정말 이를 몰라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단속반의 입장에서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난민신청을 하기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난민신청은 결코 한국에서 오래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청 후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버마가 민주화되기 전에는 고국에 돌아 갈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룬 것들 가족들 모두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반평생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누가 좋아서 내 흔적들을 버리고 싶겠는가.”
이들 모두 한국정부가 규약한 ‘난민협정’에 합당한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난민인정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뚜라씨의 말처럼 난민신청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과거를 등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서도 계속 과거를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잃어버린 과거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실상 난민이라는 것은 체류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난민 심의를 하는 동안에는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본인 명의의 통장 개설이나 휴대폰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버마행동 활동가중 팀인(Tim Yin)동지는 불법체류자로 청주보호소에 수감된 후에 난민신청이 접수 됐다. 현재 120일 넘게 청주 보호소에 수감 중인데, 난민 인정이 나기까지 통상 4-5년이 걸리는 걸 감안 한다면 얼마나 오래 보호소에 머물지 알 수 없다”
보호소에 수감된 어떤 이주노동자도 범죄자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인권유린과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지난 5월 이주노조 위원장 아노아르 역시 출입국의 표적단속으로 인해 청주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6월 법무부에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 단속 및 연행에 관한 명시적인 법적 근거 조항’에 대해 ‘법무부가 법적 근거로 제시한 △출입국관리법 제46조(강제퇴거의 대상자), 제47조(조사), 제48조(용의자의 출석요구와 신문)는 원칙적으로 임의 조사를 규정한 조항이고 △동법 제102조(통고처분)와 사법경찰관리직무법 제3조 제5항은 행정범죄에 대한 수사 및 처분에 대한 절차를 규정한 것이며 △출입국관리법 제51조 제1항의 보호 조항은 사전 보호명령서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므로 무차별적인 단속 및 연행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으나, 출입국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적인 단속과 구금은 계속 자행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가?
지난 6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버마어로 개안됐다. “에치흐니 공떼이카 엠미 빠무꾸에뚜(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가 가진 역사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연대’란 어느 때이고 곧 실천일 수밖에 없다. 비단 어떤 ‘사실’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뛰어 들어야 한다. 그 때 대면하는 ‘사실’과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간의 괴리에서 우리 사회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난 뚜라 역시 그런 사람이다.
책 팔아요
쪽글이나 메일(antimine.kr골벵이gmail.com) 주세요, 직거래가 좋고요, 부득이하게 택배로 한다면 비용을 부담하셔야 해요. 꼭 필요한 책인데 가난하면 그냥 드려요, 책 상태라던가 번역 문제나 내용 등등을 질문하시면 성실히 답할게요. 언제나처럼 오셔서 직접 사시는 분들에게는 맛난 커피를 대접해 드려요.
빨간색은 팔린 책이에요.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 원서
Essais critiques / seuil – 500원 / 책등이 매우 낡았어요.
Le plaisir du texte / seuil의 points시리즈 입니다. 문고판이에요. – 500원
Sur Racine / seuil(points) – 500원
Lec,on / seuil(points) – 500원
S/Z / seuil(points) – 500원
생산의 거울 / 쟝 보드리야르(배영달 옮김) / 백의 – 1,000원
문학 속의 언어학 / 로만 야콥슨 / 문학과지성사 / 3,000원
현상학과 예술 / 메를로 퐁티 / 서광사 / 2,000원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칸딘스키 / 열화당 /1,000원
영화 기호학 / 유리 로트만 / 민음사 / 1,500원
스타인버그 / 김호인 엮음 / 열화당 / 1,000원
오래된 미래(개정판)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 녹색평론사 / 2,000원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 곽차섭 / 푸른역사 – 군데 밑줄 있어요. – 1,500원
첫 번째 희생자 (상/하) 제임스 패터슨 / 황금가지 – 밀리언셀러 클럽 – 4,000원
시공 그리폰북스 1기 – 시공 SF총서예요. 구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어요. 🙂
파괴된 사나이 / 알프레드 베스터 / 강수백(김상훈 옮김) – 1,500원
내 이름은 콘라드 / 로저 젤라즈니 / 강수백 옮김 – 1,500원
타임 패트롤 / 폴 앤더슨 / 강수백 옮김 – 1,500원
우주의 전사(스타쉽 트루퍼스) / 로버트 A. 하인라인 / 강수백 옮김 – 1,500원
어둠의 왼손 / 어슐러 K 르귄 / 서정록 옮김 – 1,500원
매는 하늘에서만 빛난다 / 어술러 K 르귄(강혜숙 옮김) / 동서문화사 – 500원
아투안의 지하무덤 / 어술러 K 르귄(이종인 윤소영 옮김) / 웅진출판 – 1,000원
화씨 451 / 레이 브래드버리(강창래 옮김) / 성무 -1,000원
사랑의 법칙 / 라우라 애스키벨(권미선 옮김)/ 민음사 – cd가 있긴 한데, 한곡이 튀네요. – 2,500원
브이 (상/하) / 토머스 핀천 (김상구 옮김) / 학원사 – 3,000원
어둠의 속 / 조셉 콘라드 (라영균 옮김) / 자유교양사 – 500원
여로의 끝 / 존 바드(서숙 옮김) / 을유문화사 – 500원
사람의 아들 / 로아 바스또스 (남진희 옮김) / 동숭동 – 1,500원
아줌마 지구를 지켜라
부안에 다녀왔다. 영화제가 목적이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노느라 영화는 딴전이다. 부안성당 한편에서는 천연 염색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됐는데, 티셔츠를 하나 사서 황토 염색을 했다. 숯 염색보다 좀 더 간편하다는 이유로 황토 염색을 한 건데 지금 다 말려서 널려 있는 옷을 보면 아주 잘했지 싶다. 색이 곱게 잘 뱄다. 세 번 정도 염색을 해야지 좋다고 했는데, 시간에 쫓겨서 겨우 두 번을 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빛깔이 사늑하다. 같이 염색하시던 분께서 남편 발 냄새가 너무 심해 양말에 황토 염색을 해봤는데, 삼일을 신어도 구린내가 안 난다며 황토 염색을 자랑한다. 정말 삼일을 신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성당에서는 한창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지만, 염색을 마치고는 부랴부랴 부안터미널로 나가서 내소사 가는 버스에 오른다. 조금 달리니 창문으로 소똥냄새가 살살하고 염전 밭을 지날 때는 짠내가 코끝에서 배틀하는 게 어린 날처럼 마냥 들뜨고 있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이는데 그 위로 낮 달이 일찍부터 해를 민다. 창 반대편으로 논밭을 물끄러미 보며 손을 창밖으로 내민다. 저기 아직 해바란 푸른 벼처럼 흔들렸으면 싶었다. 바람이 거기서부터 손끝을 간질이고 햇빛을 흔들며 지난다. 햇빛을 한 움큼 쥐었고 손이 잠깐 반짝인다.
내소사는 연휴의 중간이라 사람들이 퍽 붐비는데 입구에 들어서니 그 많은 사람을 다 가리는 잣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 길을 만든다. 거기를 걷는 누구 할 것 없이, 나무가 만든 그늘은 모든 그림자를 한데 어우른다. 사람과 달리 나무들은 저마다 거리를 두고 섰다. 서로 그늘에 두지 않으면서도 조화롭다. ‘그리운 것들이 멀리 흩어져 있다’고 했나, 아닌가 ‘여기선 모든 게 가깝다’고 했나 보다. 가까스로 떠올려 보지만 잣나무 아래에선 그리움도 잠시 쉬어가라 일러야 한다. 직소폭포가 있는 등산로를 탈까 했는데, 크게 여유가 없었던지라 내소사만을 찬찬히 걷는다. 연못 구석에 활짝 핀 연꽃은 해거름처럼 주위를 물들이고 불당에서 오는 향내는 연꽃가지를 두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풍경보다는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그들의 뒷모습을 내내 안쫑잡았으면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등의 곡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디서는 내 선도 그렇게 가만히 풍경으로 설 수 있을까.
밤에는 계화도에서 갯벌 상영회가 있었다. 전날 무대를 설치하고 나서 바닷물이 달빛에 흔들리는 사진을 봤는데, 아름다워서 영화보다는 무대 자체가 무척 궁금했다. 직접 보니 머물길 참 잘했지 싶다. 영화를 보는 중에 물이 들어와서 무대를 데불고 찰랑댄다. 바위에 앉아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상영관을 보는 것만으로 먼 길의 피곤함이 가신다. 상영 중에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걷는다. 밤은 적막한데 바다는 보다 멀리까지 고요하다. 무대의 빛이 멀찍이 야울거릴 때 무르팍까지 물이 찼다. 발바닥을 살갑게 맞는 갯벌 위에서 바다에 손을 담갔다. 바라보는 내 손끝이 암암했고, 고개를 드니 멀리 이쪽을 보고 선 사람이 어름거린다. 천천히 다가온다. 달래다. 오길 잘했지? 응. 친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반딧불을 봤다. 계화도 밤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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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얘기를 했는데, 푸핫 입어보니 작네요, 쫄티처럼 돼버렸어요, L사이즈를 샀건만 염색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줄었나 봐요, 색깔은 살굿빛으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데 작다니.
느림씨가 모기에 50군데 정도 물렸다고 주의를 줬건만 저는 거짓말 안 하고 500군데는 물린 것 같아요, 모기에 물린 게 아니라 무슨 피부병에 걸려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답니다. 그리고 어찌나 가려운지 빼빠로 몸을 죄다 문 데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번 긁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루 이틀 지나면 가려운 게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놈의 모기들은 염치도 없지.
그나저나 아줌마 지구를 지키라고 했건만 영화는 통 보질 않아서 말이죠. 🙂
I never will give up!
토요일 다급한 전화가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인천공항 보호소로 넘어갔고 곧 출국 당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주노조가 그의 단식 보도 자료를 프레시안에 냈을 때, 법무부에서 즉각적으로 그런 일이 없다고 대응한 뒤 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인천보호소로 몇몇 동지들이 확인을 했지만 출국했다는 답변만을 들은 게 다였다. 오늘이 돼야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공감의 변호사들과 이주인권연대, 설동훈 교수 등등으로 이뤄진 ‘보호소 인권 실태 조사팀’이 내놓은 보호소 내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국의 모든 보호소가 어쩜 하나같이 불결하고 좁고, 운동을 할 수 없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을 뿐더러 그런 상황은 출입국 직원들의 태도에 고스란히 전이돼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인천보호소에 있는 여성들의 경우 3개월 넘게 생리대를 지급받지 못했던 사실, 여성 보호자들에게는 여성 직원이 붙어야 한다는 출입국의 그 마저의 규정마저 무시한 채 여성 직원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 단 한 번도 옷을 갈아입을 수 없었다는 사실, 출입국 공무원들과 공익들의 반말과 막말, 면회시간을 지들 멋대로 조정하는 것 등등, 이것들은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보호소 내의 인권 실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것에 대항에 크리스티앙은 단식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 크리스티앙의 글이 이주노조 게시판과 그의 블로그에 올랐다. 그는 독일로 돌아갔고, 모든 것을 남겨둔 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방당했다. 그간의 정황을 설명했고,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한 명이 추방당하면 10명이 그 투쟁을 이을 테고, 더 많은 동지들이 그의 싸움을 맞잡고 갈 것이다. 여기서도 그곳에서도 어디에서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Christian! Niemals Aufgeben!
7월만
7월 개인적으로 풍족한 달이었으나 관계를 두고는 판달랐다. 마음은 쉬이 가시질 않고 앙잘거리고만 있다.
적어두지 않으면 죄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언제고 시간이 되면 길게 늘여야지라고 쓴다.
3. 판타스틱 아시아 / 미친년 프로젝트
8. 끔찍하게 정상적인
13.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21. 인 디스 월드
30. 점거하라
31. 친절한 금자씨
하나하나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중립 – 롤랑 바르트
타이거 타이거 – 알프레드 베스터
여로의 끝 – 존 바쓰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 마종기
이다의 허접질
나는 전설이다 – 리처드 매드슨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 김민정
스키즈 매트릭스 – 브루스 스털링
로캐넌의 세계 / 유배 행성/ 환영의 도시 – 어쉴러 k 르 귄
연 – 로맹가리
비잔티움의 첩자 – 해리 터틀도브
텍사코 – 파트릭 샤마와조
피서를 겸해서 대부분 신간 sf를 주로 읽었고 그간 사놓고 쌓아두기만 했던 몇 권을 들추게 됐다. ‘텍사코’나 ‘여로의 끝’을 꽂아만 뒀더라면 지옥에서 만세를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마구 설레고 있는 것은 오늘 손에 잡은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바렌찐 라스뿌찐’이다.
『패니 힐』 그리고 김인규
얼마 전에 「판타스틱 아시아」전을 보면서 김인규 씨 얘기를 들었다. 나를 가이드 해주던 분이 친한 사이라며 혹 아느냐고 물었을 때, 몇 년 전에 누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던 교사정도로 기억했다. 실은 더 기억할 게 없기도 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 대법원(주심 박재윤 대법관)에서 음란물 게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일부 유죄를 받아들여 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
존 클레랜드의 『패니 힐』은 1748년에 쓰였다. 클레랜드는 봄베이(뭄바이)의 동인도 회사에서 실직당한 후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몹시 궁색하여 여기저기서 돈을 빌어 쓰고, 결국에는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히고 만다. 감옥에 있을 때 한 출판사로부터 호색 소설을 쓰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쓴 것이 『패니 힐』이다. 서간체 형식의 『패니 힐』은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가 각각 1748년과 1749년에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된다. 『패니 힐』은 간행되자마자 계속되는 매진과 함께 엄청난 호평을 받았지만 영국의회로부터 음란도서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재판에서 재판장 존 알 크란빌이 내린 판결은 클레랜드에게 100파운드의 종신연금을 하사한다는 것이었다. 100파운드라면 아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충분히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였다. 판결의 이유는 이 정도의 재능이 있다면 가난을 이유로 음란한 소설을 쓰지 말고 고상한 쪽에 활용하라는 배려에서였다.
곳곳이 삭제된 채로 판을 거듭해서 출판되곤 했던 『패니 힐』은 1963년 정식으로 발행이 허가된다. 당시에도 이런저런 재판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1963년 7월 뉴욕 주 최고 재판소 심의이다. 뉴욕의 순회 재판소에서는 『패니 힐』에 대해 “인간의 그 어떤 신체부분도 외설적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려 해금을 선고했다.
김인규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기준은 95년 마광수 『즐거운 사라』에 대한 판례와 알리시아 스테임베르그의 『아마티스타/열음사』가 기준이 됐고 적용한 법은 전기통신기본법위반이다.
“제48조의 2 (벌칙)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기통신기본법위반이라고 하면 01년 얼뻥한 검사가 영장청구에서 써먹었던 것에서 한 발도 못나간 것이다. 당시 검사는 “공공장소에서의 성기노출은 당연히 음란한 행위”라는 대법원 판례를 들며 “인터넷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불특정 다수인이 접속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며 어떤 행위가 인터넷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는 공공장소에서 “직접” 동일한 행위를 한 것과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영장에 썼었다. 이 지지리 한 영장에서는 모든 콘텍스트가 사라지고 없다. 거기에는 미술도 창작도 없다. 창작자의 표현과 내용은 간데없고 오직 성기와 음란만이 있을 뿐이다.
나가봐야 해서 대강 마무리한다만, 이라크 전쟁을 생중계하던 것보다 100만 배는 건전하겠다.
[정부의 인터넷 내용규제와 표현의 자유,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운 받아 읽어보면 2001년 김인규 사건의 경위를 볼 수 있다.
낡삭은
자전거를 타다가 온도계를 본다. 아스팔트와 차들의 열기가 보태져 38도를 가리키고 있다. 가풀막진 길에서 숨이 가빴고, 선생의 말씀처럼 내 몸땡이가 형벌만 같다.
아노아르 면회
이상훈, 혹시, b님과 함께 아노아르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5월 말(24일?)에 면회를 다녀오고는 처음인데 많이 야위었네요. 그간에 눈병으로 고생이 심했답니다. 지내는 건 워낙 출입국과 많이 싸워서 이제는 아노아르 사정을 어느 정도 봐준다고 하네요. 주변의 다른 이주분들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노아르에게 얘기해서 무슨 해결사처럼 됐더군요. 지금은 중국인들과 같이 있어서 퍽 답답하다고 합니다. 방안에 몇 사람이 있는데, 서해 EEZ에서 고기를 잡다가 잡혀온 중국인 어부들이라고 합니다. 그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너무 떠들어서 잘 못 쉰다고 하네요. 보호소 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나라끼리 한 방에 있다고 합니다. 아노아르도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더니, 따로 독방을 줄까 묻더랍니다. 심심해서 싫다고 했데요. 말이 안통해도 몸짓으로 할 만큼은 소통을 한다고, 그게 그래도 혼자 있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하더군요. 🙂 아노아르가 청주 보호소에서 지낸지 벌써 2달이 넘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제스처가 안 나오고 있습니다. 뭐랄까 국가인권위에서 보호해제 권고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과연 법무부에서 받아들일지 미지수 입니다.
현재 인권위에서 몇몇 단체를 통해 보호소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주인권연대, 아름다운 재단 변호사들, 설동훈 교수 등등으로 꾸려졌는데, 단속 할 때의 위법사항이라던가 보호소 내에서의 처우, 보호소 안에서 통역 문제 등등에 대해서 세세하게 조사하고 있는 듯합니다. 크리스티안 같은 경우 화성보호소에서 목동으로 다시 온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현재 목동은 실태조사가 끝났는데 화성은 아직 안했답니다. 그 보호소에서 뭔가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람들을 빼돌렸다는 얘기지요. 크리스티안이 화성에 남아있으면 보호소 실태나 단속 과정에 대해서 출입국을 여러모로 귀찮게 할 여지가 다분한데 이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것들. 동행한 분 중에 조사에 직접 참여하고 계신분이 있는데 조만간 자료가 나올 거라고 합니다. 그 와중에 인천 출입국에 대해서 들었는데, 짜증이 확 치밀더군요. 인천에 감호된 이주분들 중에서 3분의 1이 여성입니다. 법무부 규정상 여성 감호자들에게는 여성 직원들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인천 출입국에는 법무부 직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조사하러 나갔을 때, 이주여성들이 조사자들 중 여성분들을 붙잡고 엉엉 울더랍니다. 들어보니, 지금까지 생리대는 지급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샤워 실은 남녀 공용이고, 윽박지르는 것 때문에 뭔가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조사 자료가 나오면 얼마나 황당한 경우를 견디고 분노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청주의 경우도 방마다 cctv가 설치 됐다고 하는군요. 보호소 내의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주 분들에게는 단 한 벌의 옷만 지급 됐을 뿐인데, cctv로 한 사무실에서 모든 방을 감시하는 것부터 화장실의 문 높이가 반 밖에 안 되는 것 등등 불편함과 수치심에 대한 얘기를 하더군요. 어서 조사 결과가 나오고 이런저런 문제점에 대해 인권위의 권고가 반영돼서 비인간적인 단속과 연행, 보호소 내의 처우가 바뀌길 바랍니다.
늦었지만 오늘 2시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보장에 대한 결의대회가 있습니다. 비가 안 온다면 작은대안무역은 부스를 차리고 함께 할 계획입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